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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재계시각)윤석금, 또 다른 ‘렌탈 신화’ 이뤄낼까
"팔지 말고 빌려주자" 발상 전환
거품 제거한 2만7천원 요금제 성공
2018-11-02 13:36:24 2018-11-02 13:36:26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로 로 온 국민이 어려움에 처했던 당시. 소비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정수기 같은 고가의 상품 매출이 뚝 떨어졌다. 웅진코웨이의 정수기 매출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사장이 책임지고 물러났고, 할 수 없이 문봉(文奉) 윤석금 웅진그룹 창업주가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어떻게 해야 회사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고민을 거듭하던 문봉은 문득 ‘그래! 비싸니까 팔지 말고 빌려주는 거야!’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정수기를 빌려주고 관리까지 기업이 책임진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담 없는 비용으로 편리하게 제품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팔지 않고 빌려주니 제품의 소유주는 여전히 기업이고, 그런 만큼 기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품 관리를 꾸준히 할 수 밖에 없다.
 
남은 문제는 얼마의 비용을 받고 빌려 주느냐였다. 주변사람들에게 “매달 2만7000원 정도면 빌려 쓸 생각이 들까요?”라고 질문하자 괜찮겠다는 반응을 얻었다. 2만7000원은 원가를 따지거나, 서비스 비용 등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수치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과장 정도면 정수기 렌탈에 얼마쯤 지불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소비자 입장에서 합당하게 받아들일만한 금액이 그 정도겠다 예상한 것이었다. 문봉은 판매자의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2만7000원 정도여야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가격을 정해놓고 역으로 원가와 서비스·마케팅 비용을 계산해 보니, 110만원짜리 일반 정수기를 2만7000원에 빌려주는 건 수지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문봉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한 가격에 맞추기 위해 모든 비용을 역산해 줄일 수 있는 건 모두 줄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렌탈 마케팅의 꽃, ‘코디’ 제도다.
 
코디란 ‘코웨이 레이디(Coway Lady)’의 줄임말로, 고객의 대부분이 주부라는 데 착안해 조입한 시스템이다. 두 달마다 우리 집에 찾아와 필터를 갈아주고 수질 검사를 해주고 해박한 지식으로 깐깐한 물을 마시는 법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면, 그것도 이모나 언니 동생 같은 여성이라면 고객의 입장에서 훨씬 편안하고 좋을 것 같았다. 고객 중심, 특히 주 고객인 주부의 입장에서 고민한 결과였다.
 
렌탈 비용을 낮추기 위해 일단 코디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였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자가 운전이 가능한 이들을 코디로 채용했다. 자동차와 유지비용을 회사에서 대는 대신 자기차를 쓰게 한 것. 대신 회사는 인센티브를 더 지급해 차량 유지비를 지원했다.
 
코디는 곧 웅진의 얼굴이라는 생각에 서비스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법, 표정, 화장법, 언어구사, 태도 등은 비디오를 활용한 교육을 진행했고, 인사할 때의 각도나 손의 위치도 수백 번씩 실습했다.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 응대도 일일이 점수를 매겼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98년 2월, 마침내 2만7000원이라는 가격에 정수기를 렌탈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사업 시작 2년 반 만에 50만대를 ‘빌려줬다.’ 직전까지 국내 정수기 보급대수가 20년간 200만대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문봉은 “만약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기존의 사고에만 머물렀다면 웅진코웨이의 매출은 2000억원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렌탈이라는 아이디어 덕분에 2017년 회사 매출은 무려 2조5000억원대 달한다. 문봉의 발상의 전환은 국민들의 제품에 대한 시각을 ‘소유’에서 ‘렌탈’로 바꿨으며, 이는 지금 유행하는 ‘공유’로 진화했다.
 
그는 ‘남들과 다른’ 생각, 즉 창조적 발상의 실천이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비슷비슷한 전략으로는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새로운 것을 꿈꾸는 창조적 발상과 그 실천이 바로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문봉이 5년여 만에 자식과도 같은 코웨이를 되찾았다. 재계는 벌써부터 그가 코웨이를 통해 어떤 또 다른 ‘2만7000원 렌탈의 기적’을 보여줄지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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