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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블록체인, 소셜 임팩트 이뤄낼 수 있을까
유엔글로벌콤팩트, '소셜 임팩트를 위한 블록체인' 특별세션 주최
국내 블록체인 기술 경쟁력 뒤처져…적극적 투자와 지원정책 필요
2018-10-15 08:00:10 2018-10-15 08:00:10
158년 전통을 자랑하던 세계 4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는 2008년 9월15일 6130억달러의 부채를 끌어안고 파산했다. 이날 하루 동안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증시까지 주가가 2%~4%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와 미연방준비위원회의 부패가 드러났고, 세계는 그들이 만든 파생상품이 휴짓조각으로 전락하는 걸 목격했다. 중앙집권적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블록체인은 그 직후 세상에 나왔다. 2008년 10월31일 나카모토 사토시의 9쪽짜리 논문에 등장한 "조작이 불가능하고 개인 정보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거래의 투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획기적인 통화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이 세상에 나온 지 10주년을 앞두고 있다. 최근 탈중앙화와 거래투명성이란 특징을 가진 블록체인이 '소셜 임팩트'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소셜 임팩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사회 시스템' 변화를 추구해 사회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다. 과연 블록체인은 중앙집권적 경제구조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성을 개선하는 소셜 임팩트를 이룰 수 있을까. 
 
지난 10일 제19회 세계지식포럼 특별세션으로 진행된 '소셜임팩트를 위한 블록체인'은 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이 세션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공급망 투명성 확보와 공유경제 활성화 등 사회적 가치 창출에 나선 기업 사례가 소개됐다. 반면 정부가 2018년을 블록체인 육성의 원년으로 삼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블록체인 기술 발달 수준이 미비한 상황이다. 국내에선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소셜임팩트 실현이 언제쯤 가능해질지 미지수인 이유다.
 
거래 투명성 담보하는 블록체인이 사회적 경제 선도
 
유엔글로벌콤팩트(UNGC)는 10일 오후 신라호텔 영빈관 루비홀에서 '소셜임팩트를 위한 블록체인'을 주제로 특별세션을 진행했다. 10일~12일 사흘 간 진행된 제19회 세계지식포럼의 특별세션으로 마련된 이 세션에선 대니얼 존스 벡스트360(Bext360)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샌드라 로 글로벌블록체인비즈니스협의회 CEO, 이원홍 블루웨일 재단 CEO 등]이 연사로 나섰고 이정훈 연세대학교 교수가 토론회 좌장을 맡았다. 
 
박석범 UNGC 한국협회 사무총장은 환영사에서 "블록체인은 데이터와 자산거래의 신뢰성을 높임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신뢰를 받는 기업의 상품이 꾸준히 소비되고 수익을 창출하는 만큼 거래 투명성 증진에 기여하는 블록체인이 기업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BSR과 Globescan이 발표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서베이 2014(State of Sustainable Business Survey 2014)'에 따르면 비즈니스에서 대중의 신뢰를 증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투명성 강화다.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인 블록체인은 중앙 집중형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하지 않고,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 내역을 보내 준다. 거래 때마다 모든 참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대조하기도 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할 경우 데이터 조작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거래 투명성도 월등히 높아지는 이유다.
 
블록체인은 특히 기업 공급망 투명성에 기여해 소비자 신뢰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공급망이란 원재료를 획득하고, 이를 중간재나 최종재로 변환, 최종제품을 고객에게 유통시키기 위한 조직 및 비즈니스 프로세스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그간 급격한 세계화와 다변화로 인해 소비자들이 제품의 복잡한 공급망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2013년 세계 무역의 약 80%가 다국적기업에 의해 발생한다고 측정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구매 의사 결정을 내리기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급망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다면 원재료 획득부터 유통까지 각 단계의 정보 추적이 가능해져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벡스트360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공급망 개선을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덴버에서 설립된 스타트업 벡스트360은 커피 구매 과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해 수확에서부터 제조까지 추적 과정을 개선했다. 벡스트360은 커피농장에서 수확된 원두를 3단계의 등급으로 분류해 원두의 생산지 및 생산자, 구매자, 구매가격과 같은 정보를 블록에 기록했다. 고객들이 커피 포장의 QR코드를 스캔하면 농장 수확에서부터 세척, 건조, 수출, 로스팅, 매장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거래 날짜와 위치를 알 수 있다.
 
대니얼 존스 CEO는 세션 발표에서 "이 같은 공급망 개선이 커피 농부(생산자)에게 더 많은 가치가 돌아가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술이 커피 공급망에서 중개인의 역할을 축소시키며 공정무역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 공급망에서 커피 농부는 품질평가부터 가격책정까지 중개인에게 의존해야 했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되면 농부들도 커피에 관한 가격 및 품질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거래 투명성이 향상된다. 결국 블록체인으로 구현된 정보 트래킹이 커피 농부들에겐 합당한 이익 배분을, 소비자에겐 정확한 상품 정보를 담보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공급망 투명성 강화가 윤리적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품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될 경우 소비자가 노동착취나 환경오염 등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입각해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장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 가운데 67.7%가 "공정무역 제품의 내용이 좋아서 적극 동참하고 싶다"고 밝혔을 만큼 공정무역에 대한 공감대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들이 벡스트360처럼 제품 추적 기능을 통해 공급망 투명성을 개선한다면 이들의 윤리적 소비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니얼 존스 벡스트360(Bext360)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10일 신라호텔 영빈관 루비홀에서 진행된 제19회 세계지식포럼 특별세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KSRN
 
블록체인이 가져올 2세대 공유경제
 
두 번째 연사인 이원홍 블루웨일 재단(블록체인 기반 공유경제 플랫폼) CEO는 '공유경제, 블록체인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공유경제는 생산설비나 서비스 등을 개인이 소유할 필요 없이 빌려 쓰고, 자신이 필요 없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경제시스템이다. 유형, 무형의 자산을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공유경제의 핵심인 것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기존의 1세대 공유경제를 대표하는 플랫폼이다. 그러나 이 같은 1세대 공유경제에선 플랫폼이 또 하나의 중앙으로 자리해 참여자들에게 보상이 투명하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시간이 지나며 공유경제의 이익은 중개 플랫폼만 독점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원홍 CEO는 발표를 통해 "블록체인이 공유경제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을 끼고 이뤄지던 1세대 공유경제의 거래방식이 이용자와 공급자가 직접 거래하는 2세대 공유경제로 진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블록체인의 보안성과 투명성이 거래의 신뢰도를 높여주면 거래 신뢰도 담보를 위해 존재했던 기존 공유경제 플랫폼 기업은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2세대 공유경제는 탈중앙화된 거래방식을 무기로 수수료를 없애 공유경제 서비스 공급자가 공정한 대가를 받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텍사스 기반의 차량 공유 스타트업 아케이드 시티는 중개자를 제외해 수수료를 줄임으로써 우버를 위협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가져올 2세대 공유경제에선 본래 공유경제가 실현하고자 했던 노동안정성이 보다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세대 공유경제 초기에도 "공유경제를 통해 언제든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정규직 수준의 노동안정성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단순노동서비스가 주를 이뤄 진입 장벽이 낮은 탓에 노동 공급 과잉으로 단가가 낮아졌고, 노동시간은 그만큼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원홍 CEO는 "블록체인 기반 공유경제에선 개인 간 거래가 이뤄져 맞춤형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며 2세대 공유경제에선 단순노동서비스 탈피가 가능해진다고 언급했다. 또 이 대표는 "플랫폼 수익으로 복지프로그램을 제작해 참여자들의 노동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실제 블루웨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블루웨일은 블록체인 기술의 보안성과 투명성을 살려 비정규직 및 프리랜서를 위한 고용 시스템을 지원한다. 사업체를 만들 수 있는 마켓 플레이스를 제공하고, 일할 사람을 구하고, 지능형 광고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구직자들도 블루웨일 플랫폼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할 수 있다. 블루웨일의 플랫폼 수익은 자영업자와 프리랜서의 연금 및 유급 휴가와 같은 고용 혜택으로 돌아간다. 
 
한국 블록체인 육성 계획·현황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올해 발표한 기술동향브리프에 따르면 한국은 "비허가형 블록체인 분야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제외하면 블록체인을 개발하고 있는 업체의 수가 적고 관련 요소기술 및 개발자 인력도 부족하여 생태계 구성의 초기 단계"에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올해 1월 2018년을 블록체인 기술 확산의 원년으로 삼고 기술개발에 100억원, 시범사업에 42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지난 6월 '블록체인 기술 발전 전략'을 발표해 공공 선도사업을 추진해 블록체인 초기시장을 형성하고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부의 블록체인 기술 육성 투자규모와 속도가 해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4월 발표된 KDB미래전략연구소의 '중국 블록체인 발전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17년 중국의 블록체인 벤처 투자 규모는 12억7천만위안(2154억원)으로 2016년 대비 170% 증가했다. 미국은 정부 서비스에 블록체인을 활용하기 위한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법률 제정 등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해외 국가들이 막대한 투자와 기술 활용을 위한 법개정에 나서는 데에 반해 한국 정부는 중장기 계획을 마련한다는 입장 외에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블록체인 관련 민간단체들이 먼저 나서서 정부에 법안과 자율규제안을 제안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는 정부에게 '블록체인 산업 진흥을 위한 기본법'을 제안했다. 국무총리 산하 '블록체인산업 전략위원회'를 설치하고, 소관 부처가 블록체인 산업의 중장기적 육성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 전략'에서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힌 뒤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블록체인 기술력은 선도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한국의 블록체인 기술은 미국의 76%로, 일본(84%), 중국(78%)에 비해 뒤처진다. 블록체인 기술은 세계적으로 2025년쯤 대규모 상용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세계의 블록체인 기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컴퓨터 운영체제나 데이터베이스 분야가 그랬던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도 글로벌 기업에 종속될 우려가 나온다. 국가차원의 조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정책 추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박예람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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