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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면 요리 연구만 15년…세계인 입맛 사로잡는 게 목표"
황준호 농심 면개발팀 연구원, 스파게티 간편식 개발한 '면 도사'
"중공면은 농심 독자기술, 미투 모방 어려워…건면시장 주도 기대"
2018-09-10 15:20:51 2018-09-10 15:28:15
[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최근 식품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제품이 있다. 끓는 물과 5분의 기다림만 있으면 근사한 스파게티가 완성되는 '면 간편식'이 등장한 것. 시중에 스파게티 맛 라면은 존재했지만 고작 1600원의 가격에 진짜 스파게티 면을 컵 용기에 담은 시도는 처음이었다. 국내 1위 라면회사 농심에서 15년 간 오로지 면 개발을 연구해 온 황준호 연구원이 공들인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6년 전 파스타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 매 끼니를 파스타만 먹다시피 했다. 최고의 스파게티 면 식감을 구현해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8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쏟아부었다. 이탈리아에서 내로라하는 셰프가 만든 스파게티 맛에도 만족하지 못했던 깐깐한 그가 개발을 주도한 '스파게티 토마토'. 라면 시장 위축 속에 농심이 하반기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면 도사'를 자처하는 황준호 연구원의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황준호 농심 면개발팀 연구원. 사진/농심
 
농심의 연구원으로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됐나?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2004년 농심에 입사해 지금까지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어느덧 햇수로 벌써 15년째가 됐다. 농심은 면, 스프, 별첨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각각 나눠져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면을 연구하고 있고, 주로 바람에 말린 면인 건면을 개발해 왔다.  
 
최근 농심이 야심차게 선보인 '스파게티 토마토'를 개발한 장본인이다. 제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농심 스파게티 토마토는 기름에 튀기지 않고 바람에 말린 건면(乾麵) 제품이다. 농심은 라면업계 최초로 실제 스파게티 주 재료인 '듀럼밀(durum wheat)'로 면을 만들어 스파게티 식감을 제대로 살렸다. 소스 역시 스파게티와 최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토마토 소스를 사용해 정통 스파게티의 맛을 완성했다. 우리 회사는 오랫동안 스파게티에 주목해왔다. 다른 기업엔 없는 건면 사출 설비가 있다는 점도 개발에 나선 배경이 됐다. 정교한 연구개발을 거치면 스파게티를 제품화하는 것이 가능했다. 설비가 준비되어 있는 만큼 스파게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스파게티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잡을 때를 기다려 개발에 착수했다. 특히 면 식감을 연구하기 위해 스파게티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링귀네, 탈리아텔레, 부가티니 등 여러 파스타 면을 먹고 연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어떤 면이 제품에 가장 잘 어울릴지 찾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에서 삼시세끼 파스타를 먹은 것은 물론이고, 하루 7번 이상 파스타 면을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유명 파스타 면 제조 공정을 관찰하고, 발품을 팔고 다녀 파스타 전문가가 된 뒤에야 파스타 중에서도 스파게티를 최적의 면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제품이 출시되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었을텐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
 
-연구개발에 집중한 것은 알 덴테(Al dente)의 식감을 찾기 위해서였다. 알 덴테는 면을 삶았을 때 안쪽에서 약간의 단단함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스파게티 식감이다.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면의 겉은 완전히 익고 속은 살짝 설익은 알 덴테를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반죽 배합을 바꾸고, 면 두께를 미세하게 조절해가며 스파게티 식감을 조절해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면을 풀었을 때 면 형태가 먹음직스럽게 나오는 것까지 계산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진짜 스파게티로 손색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쓰인 듀럼밀만 한 해 50톤에 달했다. 또 한 가지, 농심은 조리 시간을 단축하는 데 집중했다. 농심은 기존 스파게티 조리 시간을 절반 이상 단축한 5분이면 완성되는 스파게티를 목표로 정했다. 진짜 스파게티를 간편히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반조리 상태의 제품을 만들면 면 조리 시간을 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조리 상태로는 스파게티 고유의 단단한 식감을 살릴 수 없었다. 오랜 연구 끝에 농심의 독자적인 중공면(中空麵) 제조 기술로 스파게티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중공면은 면 중앙에 얇은 구멍을 뚫은 것으로, 면의 표면적이 1.5배 이상 넓다. 구멍 사이로 뜨거운 물이 스며들기 때문에 면이 더 빨리 익는다. 그 덕에 식감을 살리면서 조리 시간도 단축했다. 면 90가닥을 새둥지 모양으로 바람에 그대로 말리는 농심의 네스팅(Nesting) 공법도 적용했다. 둥지 모양으로 면을 말린 덕분에 컵 용기 안에 넣을 수 있다.
 
농심이 하반기에 가장 큰 기대를 건 신제품이다. 출시 후 가족들이나 지인들 반응은 어땠나?
 
-출시 전에는 제품을 가족들에게도 먼저 보일 수 없어서 출시 후 가족과 함께 시식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컵라면 용기에 진짜 스파게티가 나와 반전이라고 이야기 했다. 또한 끓는 물을 붓고 5분만에 완성되며, 가격도 편의점에서 1600원이면 살 수 있으니 시간으로나 비용면으로나 매우 경제적이라고 극찬을 했다. 특히 곁에서 오랫동안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해온 고생과 노력을 알기에 아내는 제품을 시식한 후에 노력끝에 완성도 높은 제품이 나온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식품업계엔 미투제품이 즐비하다. 스파게티 토마토는 경쟁사가 모방할 가능성이 없을까?
 
-스파게티 맛 라면은 시중에 있지만 용기면에 진짜 스파게티 면을 구현한 제품은 농심 스파게티가 유일무이하다. 5분만에 완성되는 진짜 스파게티를 만들기 위해 오랜기간 시행착오를 겪었고,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이기에 단기간에는 쉽지 않을 거라 본다. 
 
전통적 라면시장이 위축 중인데 반해 이번에 출시된 스파게티 토마토 같은 건면 시장은 성장 중이다.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나?
 
-건면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연평균성장률은 18.4%에 달하고, 라면의 원조 일본의 경우 지난해 전체 라면시장에서 건면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한다. 웰빙 트렌드와 발맞춰 건면시장은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튀기지 않아 담백한 건면의 매력에 소비자들이 응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보편적인 입맛을 찾는 게 쉬운일이 아닐 것 같다. 개발 과정에서 고민이나 고충도 있을 것 같은데?
 
-먹거리 제품은 너무 앞서가도 뒤처져도 시장에서 인정받기 힘들다.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지만 소비자의 니즈에 딱 맞는 제품이 무엇인지가 늘 고민이다. 
 
농심의 연구원으로 몸 담으면서 느끼는 자부심이 있다면?
 
-오랜 노력끝에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잘 팔릴 때이다. 주말이면 마트를 가서 내가 만든 제품의 진열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살피기도 한다. 하나하나 내놓은 제품들은 모두 자식같고,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늘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농심은 월등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제품에 대한 장인정신을 가진 선후배 연구원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제품을 개발하는데 있어 원칙이나 신조가 있다면? 
 
-더욱 차별화된 건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쌀면과 당면, 쫄면 등 다양한 면을 비롯해 보리, 콩, 글루텐 프리 원료까지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면 요리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 포부도 있다. 농심 스파게티 토마토가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를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개발한 제품이었다면, 앞으로 한국 면 요리를 제품화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게 목표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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