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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당사자' 스스로가 사회변화를 이끈다
"소농들의 조직체가 이끌어낸 개인과 지역사회의 변화"
2018-09-03 08:00:00 2018-09-03 14:46:38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이, 누구인가?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지만, 위기가 나타나는 현상은 각기 다르고 '보편적인 해결책'을 적용하긴 어렵다. 더 이상 위인전에서나 볼 법한 인물들이 사회의 모든 변화를 주도하고 이끌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소위 평범한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다.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이름하여 '당사자'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조직체를 구성해 변화를 만든다.
 
'당사자'가 만드는 변화의 특징은 공정무역 생산자협동조합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그들은 행동으로 권위와 권한을 만든다.
둘째, 그들은 필요에서 해결점을 찾는다.
셋째, 그들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끈다.
 
조직화로 권위와 권한을 되찾은 파라과이 만두비라(Manduvira) 협동조합
 
파라과이는 강수량이 많아 사탕수수 재배에 이상적인 기후를 가진 나라다. 파라과이 만두비라의 사탕수수 재배 소농들은 1975년 만두비라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을 만들기 전 농부들은 사탕수수 가공공장주가 부르는 가격에 의존해 터무니없이 싼 값에 사탕수수를 팔아야 했다. 가공공장 주인이 부르는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다른 농민이 공장주가 제시한 가격에 사탕수수를 팔면 더 이상의 선택권은 없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민에게 사탕수수를 '제값'에 팔 수 있는 권한이나 협상력이 없었던 것이다.
 
만두비라 사탕수수 농민들은 농민들이 제시한 가격에 사탕수수를 살 때까지 가공공장 주인에게 사탕수수를 팔지 않기로 약속했다. 가공공장주 역시 사탕수수를 가져오는 농민이 없다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공장주는 농민들이 제안한 판매가를 받아들였다.
 
1975년 만두비라 사탕수수 농민들이 소농들의 조직체인 만두비라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다. 농민들이 "내겐 권한이 없어"라고 푸념만 하고 단결하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되찾지 못했을 것이다. 만두비라 협동조합은 사탕수수의 판매는 물론이고 조합공동의 새 트랙터도 구매해 농민 모두가 같이 사용하는 등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익이 사탕수수를 키우는 농가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필요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한 르완다 쿠카무(COOCAMU) 커피협동조합
 
2016년 르완다 서쪽 키부(KIVU)호수에 사는 400명의 커피농부들은 협동조합을 만들고 스스로의 이름으로 커피를 팔기로 결정했다. 르완다는 전 국민의 80%가 커피를 경작하는 나라다. 생계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하는 커피의 판로는 르완다 농부의 미래와 직결된다.
 
협동조합을 조직하기 전 커피농사자금이 필요했던 농부들에게 은행의 문턱은 높았다. 커피를 구매하는 독점 대기업에게 수확자금을 빌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들은 25%가 넘는 고리대를 요구하곤 했다. 농사자금을 빌리고 나면 커피는 이미 돈을 빌려준 커피기업의 소유였다. 커피를 수확해도 빚을 갚고 나면 농부들이 가져갈 수 있는 소득은 없었다.
 
가난한 농부들 스스로 만든 쿠카무 커피협동조합은 농민들의 필요로 일어선 조직이다. 그들의 어려움은 불평등, 빈곤, 사회적 배제, 권리 등의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 맞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만 강조된다면 일차적으로 국가나 시장 등 거시적 단위에서만 그 책임을 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농부들은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힘을 모아 가공센터를 짓고 커피를 수출할 새로운 판로를 모색했다.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의 관점은 개인 수준의 미시단위부터 국가수준의 거시단위까지 각 주체의 역량과 자원 및 전략을 보다 넓게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쿠카무 커피협동조합은 한국의 판로개척을 시작으로 유럽을 비롯한 커피바이어들의 관심과 파트너십 요청을 받고 있다. 25%가 넘는 고리대금을 요구했던 르완다의 커피 대기업들은 고리대금을 소폭 낮추거나 낮출 의사를 비쳤다.
 
당사자의 변화는 지역사회에 나비효과를 만든다. 만두비라 협동조합과 쿠카무 커피협동조합은 농작물의 생산과 판매는 물론이고 파라과이 사탕수수, 르완다 커피산업의 기존 지형을 흔들어 놓았다. 소농들의 조직체를 통해 거래관계에서 힘을 키워 사탕수수와 커피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가 됐고 이는 사탕수수 공장주와 르완다 커피 대기업들을 일부 바꿔놓았다. 농가의 이익을 높이고 사탕수수와 커피를 더욱 잘 키울 수 있는 공동체를 '당사자'가 주도할 수 있음을 증명한 부분이다.
 
오늘도 만두비라 협동조합과 쿠카무 커피협동조합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삶과 더 많은 사탕수수, 커피 농가의 삶이 변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을 키우고 공동체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이혜란 아름다운커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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