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이정모의세상읽기)말 대신 산수로
2018-06-22 06:00:00 2018-06-22 06:00:00
물리학이 흥미로운 까닭은 산수로 표현되는 각종 법칙으로 우주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우주를 설명하는 물리 법칙들은 대체로 겸손한 이름을 갖고 있다. 자신이 발견한 법칙이 우주의 작은 구석 하나를 해명할 뿐이라는 과학자들의 생각 때문이다. 우주 구석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도 물리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거창한 이름의 물리 법칙도 있다.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이 바로 그것. '모든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잡아당기는 힘을 해명하는 법칙'이라는 뜻이다. 이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아이작 뉴턴(1643~1727)이다. 뉴턴은 이 법칙을 44살 때 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를 통해 세상에 처음 소개했지만 고작 23~24살 때인 대학 재학 시절에 이미 발견했다.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당기는 힘의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순하다. 도대체 뉴턴은 이런 법칙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뉴턴이 정말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착안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어떤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던 시절이다. 그냥 직관적으로 옳은 것이었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도 일찌감치 돌이 떨어지는 이유는 불-공기-물-흙이라는 사(四)원소들이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파했을 정도다.
 
만유인력이라고 하면 뉴턴과 함께 사과를 상상하지만 뉴턴은 분명히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를 딛고 서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뉴턴은 누구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가 바로 그 어깨의 주인이다.
 
케플러는 (대부분의 현대 한국 과학자처럼) 안타깝게도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를 고용한 사람은 덴마크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1546~1601). 브라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관측가로 평가된다. 정밀한 관측 장비를 개발했고 당시 최고의 천문대를 건설했으며 정말 부지런했다. 오줌 눌 시간마저 아끼면서 관측을 하느라 방광염으로 세상을 떠났을 정도다. 브라헤는 자신의 관측 기록을 바탕으로 천체 운행을 계산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케플러를 고용하면서도 전체 기록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케플러는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지난한 투쟁에 승리한 끝에 정규직이 되었고 티코는 케플러에게 관측과 계산을 온전히 맡겼다. 케플러의 계산은 브라헤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끝났다.
 
계산에 따르면 지구는 초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공전한다. 국제선 항공기보다 100배나 빠른 속도다.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은 초속 47킬로미터로 공전하고 공전주기는 0.24지구년이다. 이에 비해 태양에서 가장 먼 행성인 해왕성은 불과 초속 5.4킬로미터로 공전하고 공전 주기는 248지구년이다. 이것은 관측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계산의 결과다. 60년밖에 살지 못한 케플러가 수백 년을 관찰할 수는 없다. 요즘은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중력(만유인력)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는 아직 뉴턴이 태어나기도 전이다.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이유도 모를 때였다.
 
케플러는 브라헤가 평생 동안 축적한 자료를 분석하여 행성의 운동법칙 세 가지를 발표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제2법칙이다. 케플러의 제2법칙은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같은 시간 동안 행성이 쓸고 간 면적은 속도와 상관없이 같다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행성은 태양에서 멀 때는 천천히 지나가고 태양과 가까울 때는 빨리 운동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앞에서 본 것처럼 태양과 가까운 행성은 공전속도가 빠르고 멀리 있는 행성은 공전속도가 빠르다.
 
케플러의 법칙 때문에 만유인력의 법칙이 나올 수 있었다. 뉴턴은 자신이 발견한 '힘=질량×가속도'라는 운동의 법칙과 케플러의 법칙을 기반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유도했다. 사과가 아니라 산수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법칙은 중심에 가까운 것들은 빨리 움직이고 멀리 있으면 천천히 움직이지만 각 행성이 운동하면서 쓸고 지나간 면적은 같다는 케플러의 제2법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이 있으면 바삐 움직이지만 거리를 두면 천천히 움직인다. 멀리 있는 것들은 실제로 천천히 움직인다. 내 앞에 있는 것들은 바삐 움직인다. 하지만 실제로 한 일은 같다. 말이 아니라 산수로 확인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숫자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