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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 확대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동참해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국민연금의 기업관여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제고 방안' 토론회
노르웨이 운용사 스토어브랜드,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은 수익’의 방법론 역설
2018-06-04 08:00:10 2018-06-04 08:00:10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사회책임투자 확대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 관여(engagement)로 대표되는 주주권의 일상적 행사 및 강화로 대표된다. 국내 대부분의 상장기업에 투자한 국민연금은 거의 모든 투자기업의 1대 혹은 2대 주주다. 지분상으로는 문제가 있는 기업 경영방침에 의결권 행사로 제동을 걸 지위에 있다. 그뿐 아니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로 대표되는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의 부진에도 주주권을 행사해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시장감시 및 촉진으로 이어질 막대한 잠재력을 국민연금에서 찾을 수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2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열린 <해외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본 국민연금의 기업관여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제고 방안> 토론회에서 지속가능성을 투자원칙으로 세운 노르웨이 연기금 운용사 ‘스토어브랜드(Storebrand)’의 얀 에릭 사우게스타드(Jan Erik Saugestad) 대표(사진)는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을 조언했다.
 
지속가능성을 투자원칙으로 세운 스토어브랜드
스토어브랜드는 사회책임투자(SRI) 분야에서 세계적인 모범으로 꼽히는 노르웨이에서도 선도적인 기업에 속한다. 현재 약 890억달러에 달하는 개인연금을 운용 중이다. SK하이닉스, 현대모비스, 삼성전자, 신한금융투자 등 96개 한국 기업(종목)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스토어브랜드는 사회책임투자에 기반을 둔 기업관여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스토어브랜드 자산운용에 ‘지속가능’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95년이다. 지속가능이라는 원칙에 따라 스토어브랜드는 2001년 생명보험 분야에서 첫 투자 배제를 시행했고, 2010년에는 모든 투자에 지속가능 개념을 도입했다. 2015년에는 그린 본드(Green Bonds)를 세계 최초로 발행했으며, 이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에 이른다.
 
토론회에서 사우게스타드 대표는 스토어브랜드가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은 수익’이라는 하나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세 가지 방법론을 역설했다. 첫 번째 방법은 해결책(solutions)으로, 미래지향적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적극적 주주권(active ownership)으로 투자한 주식에 대한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 방식은 퇴출(exclusions)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로 판단되는 기업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사우게스타드 대표는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를 투자 분석에 도입해야 할 이유로 ▲지속가능 프레임 전반을 포괄한다는 점 ▲SDGs가 금융 측면에서도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보여주는 점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석을 가능케 한다는 점 ▲직관적인 지표인 만큼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제품·실적·협약으로 퇴출 심사...삼성·현대·롯데도 퇴출
스토어브랜드는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특정 기업을 퇴출할 때 ▲제품(product-based) ▲실적(performance-based) ▲협약(norm-based) 등 세 가지를 고려한다. 퇴출될 수 있는 대표적인 제품은 담배와 무기다. 실적으로 인해 퇴출당하는 기업은 고위험 산업(high-risk industry) 중 자체적 지속가능성이 하위 10%로 평가되는 기업이다. 협약으로 인해 퇴출당하는 기업은 국제 협정이나 조약을 빈번하게 어긴 기업이다.
 
특히 협약 위반으로 기업을 퇴출시킬 때는 내부 위원회 심의를 거친다. 8명의 수석매니저(executive manager)가 협약 위배가 발생한 뒤 해당 기업의 대응과 위배 빈도를 분기별 회의에서 논의한다. 회의에서는 기업의 상호를 밝히지 않은 채 논의하기 때문에 매니저의 이해관계를 배제할 수 있어 보다 객관적인 결정을 유도한다.
 
스토어브랜드는 2018년 1분기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퇴출당한 기업 191개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한국 기업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퇴출 사유는 ▲환경 파괴와 온난화에 중대한 해악을 끼친 기업(79개) ▲국제 협약 위반 및 인권 침해 기업(33개) ▲고위험 산업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기업(32개) 순이다.
 
이들 중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부패 및 금융 관련 범죄), 현대자동차(인권 및 국제협약 침해), 롯데케미컬(부패 및 금융 관련 범죄), KT&G(담배 판매 및 유통), 한화(논란이 되는 무기 생산), 포스코(환경 파괴와 온난화에 중대한 해악을 끼침, 국제협약 위반 및 인권 침해), 아세아시멘트(고위험 산업군에서 지속가능성이 적음)가 있었다. 스토어브랜드의 더욱 강한 ESG 스크린에 따라 향후 퇴출당할 기업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스토어브랜드의 투자전략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석탄 및 오일샌드(oil sand) 발전 투자 금지 정책이다. 스토어브랜드는 2013년 금융업계 최초로 석탄화력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철회했다. 사우게스타드 대표는 “석탄과 석유가 온난화·가뭄·각종 건강문제를 일으켜서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수익성도 좋지 않아 금융 측면에서도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후행동 100+(Climate Action 100+)’에 입각한 투자는 스토어브랜드의 철학이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다. ‘기후행동 100+’는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 5개년 이니셔티브에 따라, 세계 최다 탄소 배출 기업을 압박하고, 기후변화 관련 금융 정보 공개를 강화하며, 금융 변화 거버넌스를 발전시킨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스토어브랜드는 42개의 석유 및 천연가스 기업에 메탄 배출을 측정하고 줄이는 것을 요청했고, 지속적인 컨프런스 콜을 통해 보고의 투명성을 제고한다.
 
사우게스타드 대표는 “국민연금 역시 사회책임투자를 강화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전세계는 석탄과 작별하고 있고, 한국도 에너지 전환을 선언했다. 이제는 국민연금이 행동할 차례”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날 토론회에서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하반기에 용역 결과를 토대로 각종 지침과 규정의 개정을 논의할 예정”이며 스튜어드십 코드와 관련한 기업 관여에 대해서는 “기업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정도에서 주주 활동이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주한 영국대사관 경영환경 및 기후외교팀장인 데이비드 마키(David Markey) 서기관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포함한 영국의 CSR 정책, 기후변화 정책 및 탈석탄 정책을 설명하며 “영국은 그린 파이낸스 분야의 선도국으로 석탄 발전 관련한 파이낸싱에 대해서는 이미 2002년부터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며 “각계가 참여하는 그린 파이낸스 태스크포스를 통해 그린 파이낸스 선도국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토론회를 주관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의 이종오 사무국장은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올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라며 “130조 원에 달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기업경영 관여(engagement)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등 우리나라의 기관투자자들이 주총에서 의례적으로 찬성만 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기업관여의 경험도 거의 없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갑질’과 세금탈루 의혹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국민연금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처럼 분식회계가 발생해 국민 자산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지만 대책도 미비했고, 강원랜드에서 채용 비리가 발생해 기업가치가 떨어짐에도 국민연금은 방관자 입장을 유지했다고 지적받는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투자기관이 기업과 대화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의미다. 이번 대한항공 사건이 발생한 뒤,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개적으로 대한항공 경영진에게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이는 ESG 중 거버넌스적 측면의 오너리스크, 즉 인권 경영 측면에서 전형적인 기업 관여라고 볼 수 있다.
 
이 국장은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사태에 목소리를 냈는데, 이걸 가지고 현재 일부 매체에서 관치니 연금사회주의니 하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둔 국민연금의 행보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미국을 포함한 20여 개 국가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연금사회주의 운운하며 앞으로가 걱정된다며 논쟁을 붙이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과의 건설적인 대화, 기업가치 향상, 이를 통해 연금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다해 국민의 부를 증대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고 말했다. 양이사는 “스토어브랜드는 사회책임투자의 선도국인 노르웨이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개인연금 운용사로, 기업관여에 대해서도 상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며 “이번 행사에서 스토어브랜드의 사우게스타드 CEO가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하여서 국내 기업, 환경단체 등을 비롯한 관계 기관 실무자들이 선진국의 경험을 벤치마킹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5월 2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열린 <해외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본 국민연금의 기업관여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제고 방안> 토론회에서 노르웨이 연기금 운용사 ‘스토어브랜드’의 얀 에릭 사우게스타드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상엽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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