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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기업구조조정에서 정책금융기관 역할 축소해야
2018-03-08 08:00:00 2018-03-08 08:00:00
한동안 잠잠했던 기업구조조정 이슈가 또다시 경제현안으로 전면 부상하고 있다. 지난 2월에 한국GM이 군산공장의 폐쇄를 결정한 이후 한국GM의 추가적인 부실을 막기 위하여 우리 정부와 GM 본사간의 의견조율이 힘겹게 이어지고 있다. 금호타이어의 해외매각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해외사업에서 드러난 부실로 인해 매각이 무산된 대우건설의 재매각에 대한 우려도 끊이질 않는다.
 
진행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 사안들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공통점이 관찰된다.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중요한 이해관계자라는 사실이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2대주주로 17.0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이며 금호타이어에 대한 은행여신중 절반 이상이 산업은행에 의해 제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우건설의 경우 산업은행은 지분 5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지난 2015년 빅배스로 우리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던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도 산업은행은 56.9%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굵직한 기업구조조정에서 산업은행을 뺀다면 그 진행을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이쯤되면 산업은행을 국내 최대의 구조조정 전문기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산업은행이 국내 기업구조조정 분야의 큰손이 된 이유는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기업부실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왔기 때문이다. 고용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기업이 무너지는 상황에 임박하게 되면 정부개입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커진다. 대부분의 사례에 있어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운영자금을 대출해 주거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으며, 대출을 한 경우에도 후에 출자전환을 통해 대주주의 지위를 가지게 될 때가 많다.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시장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구조조정의 주도적 역할을 맡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정부주도의 기업구조조정이 가지는 한계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부실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더불어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기업구조조정의 당위성에 대한 비판이 많다. 기업구조조정에는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고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다. 민간의 구조조정 전문기관이 자라나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런데 시장의 기능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일상화된다면 민간주도의 구조조정 활성화는 오히려 요원해진다. 정부의 개입은 민간기구의 역할을 구축하여 시장의 성장을 더디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 민간의 구조조정 역량을 키우는 데에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시장중심의 구조조정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먼저 정책금융기관에 의한 부실기업 자금지원이 축소되어야 할 것이다. 규모가 큰 기업이 부실위기에 직면할 때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유동성 공급의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유동성 공급은 신용 공여의 성격으로 변질되었고 구조조정의 시기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구조조정이 지연될 때 일반적으로 부실의 규모는 더 커지고 구조조정에 드는 비용은 증가하게 된다. 신속한 구조조정을 촉진함과 동시에 관련비용을 절감을 위해서 부실대기업에 대한 정책금융기관의 자금지원을 과감히 줄여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책금융은 시장실패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 중소벤처기업에 더욱 집중하고, 부실대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여부는 시장이 판단하도록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한편 기업구조조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사회안전망 확충의 형태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감축은 불가피할 가능성이 높다. 실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정을 완화하는 것은 시장중심의 구조조정 정착을 위해 필수적인 환경으로 판단된다. 해당기업의 인력이 축소되어야 할 경우를 대비하여 실업급여 지급을 강화함과 동시에 재취업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따른 경제구조의 고도화 과정에서 기업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기업구조조정이 현재와 같이 정부중심으로 계속된다면 구조조정 지연과 도덕적 해이로 인한 비용증가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기업구조조정의 중심축이 시장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민간의 역량을 키우는 데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부실대기업에 대한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을 과감히 축소함과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책당국과 시장의 동반자적 노력을 기대해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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