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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미래연구원)"'네 탓 문화' 속에서의 4차 산업혁명은 재앙"
박희준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2017-11-28 06:00:00 2017-11-28 06:00:00
책임은 없고 권리만 넘쳐나는 사회
 
지난 10월의 열흘 간의 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119 구급대원들은 갖은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술에 만취해 집까지 차량 편을 요구하는 신고, 귀가가 늦어지는 남편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요구하는 신고, 고장 난 김치 냉장고 수리를 요구하는 신고, 여행 중에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아달라는 신고 등 어이없는 신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사안으로는 구급차가 출동할 수 없다는 상황실 구급대원의 설명에 본인이 낸 세금을 운운하며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는 민원을 넣겠다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고 한다. 구급대원들이 당한 수난도 문제지만, 상황실에서 어이없는 신고 접수에 응대하는 동안 위급한 상황에 구급차와 구급대원을 투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어야 할 소중한 사회적 자원을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작은 편익을 위해 낭비하는 이기적인 태도와 자신의 편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입을지도 모를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파렴치함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책임은 어디에도 없고 권리만 넘쳐 난다.
 
네 탓 문화가 만연한 사회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북한 핵 문제에 한·중, 한·미 간의 통상 마찰까지 더해지면서 안보와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이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밥그릇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밥그릇이 원하는 만큼 채워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남 탓이다.
 
최근 극장가에서는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화제다. 당쟁에서 비롯된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모두, 우리 사회가 최근에 직면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통합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모두가 사회적 통합이 어려운 이유를 남 탓으로 돌리는데 있다. 노동계는 재계 탓, 재계는 정부 탓, 정부는 국회 탓, 여당은 야당 탓, 야당은 여당 탓을 하고 있다. 모두가 네 탓이다. 내 탓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서로의 과오를 들추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대책 없는 희망을 주는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 없는 위로는 사회 구성원의 나약함과 이기심을 부추겨 ‘네 탓 문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처럼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도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양함 속에 하나가 되어야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낼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파편화다. 대중소비는 사라지고 시장과 사회에서 분출되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 지식과 노동력, 조직과 관계 등 모든 유·무형의 재화들이 파편화되어 필요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고 하면서 시장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파편화된 유·무형의 재화들이 뭉치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생겨날 것이며, 그러한 이해관계의 조정과 이해 관계자들의 통합은 파편화된 사회의 성패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이해관계의 조정과 통합은 서로가 공유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신뢰에서 비롯된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변화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다양함 속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되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네 탓만 하다가 마주하는 4차 산업혁명은 재앙이 될 것이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출처/박희준 교수 블로그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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