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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사람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던 1천 일
2017-01-17 10:53:46 2017-01-17 10:54:03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일상과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사람들은 종종 잊고 산다. 예전처럼 식구들과 한 상에 앉아 밥을 먹고, 아이들이 말썽이라도 피워서 속상하는 그런 일이 한없이 부러운 이들이 있다. 지금도 아이들의 방을 치우지 못하고, 아이의 영정을 안고 잠을 자야 하는 이들이 있다. 수학여행 가면서 금요일이면 돌아온다던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1월 9일 1000일을 맞았다. 매일을 2014년 4월 16일처럼 살아온 이들이다. 아이가 죽어갈 때 부모인데도 아무 것도 못했던 참담함, 정부를 믿었는데 그 정부는 도리어 유가족들을 속이고, 상처만 주었다. 정부가 나서서 진실을 규명할 줄 알았는데, 특별법으로 만들어진 특별조사위원회를 어떻게 강제 종료시키는지를 보게 되었다. 정치는 남의 일이고, 먼 나라의 일인 줄 알았던 이들이 너무도 아프게 정치를 알아버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1000일은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광화문 광장 바닥과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던 날들이었고,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국회의사당 처마 밑에서 비닐 치고 잠자던 날들이었고, 안산에서 서울로, 다시 팽목항으로 아픈 다리 이끌고 걷던 행진이었고, 집회와 행진, 그리고 죽기 살기로 단식을 했던 1000일이었다. 보상금 받고 조용히 물러나지 않는 자식 잃은 부모들에게 세상은 참으로 가혹했다. 이제야 밝혀지고 있지만 청와대에서부터 시작된 지침에 의해서 언론이 움직였고, 정치인들이 움직였고,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봉사단이 동원됐고, 일베가 신상을 털어 댓글을 달았다. 
 
처음에는 유가족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울면서 맞아주던 사람들이 “이젠 지겹다”고 돌변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자식의 시체를 팔아서 돈 더 받으려고 저런다는 ‘시체팔이 장사’라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돈으로 모욕하는 정부에 항의하는 표시로 이 엄마 아빠들은 눈물의 삭발식을 했다.
 
“부모라서 포기할 수 없다.”
 
돈에 눈 먼 세상에서 모욕과 설움의 시간들은 유가족들의 몫이었다. 그런 속에서 그래서 강정마을에 갔고, 밀양 할머니들을 만났고,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병원 영안실을 지켰다. 그러면서 연대의 힘을 배웠다. 
 
단순하면서도 우직스러운 그들의 발걸음에 함께 한 시민들이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노란 리본을 만들어 나누어줬고, 피켓을 들었고, 서명을 받았다. 집회나 시위가 있는 날이면 열일 제쳐두고 참가했다. 유가족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공감력을 가진 사람들이 1000일 동안 같이 견뎌왔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416세대’라고 말하고 있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물을 때 그들은 말했다.
“사람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라서, 사람이라서 포기할 수 없다는 이 단순한 끈질김이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광장을 준비했다. 그들이 준비한 광장에 사람들이 비로소 몰려왔다. 그 자리를 지켜온 유가족들과 시민들을 그들은 보았다. 
 
우리는 1000일을 견디어온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말해야 한다. 당신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 우리가 이어받아야 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처음의 그 약속으로 돌아가자. 세월호 인양하여 미수습자 수습하고, 다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다시 만들어 진상규명하자고, 생명이 존중되고 안전이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손을 잡자. 사람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길을 갈 것이라고 약속하자. 
 
오늘 다시 1009일째의 4월 16일이 지나가고 있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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