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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모로우)퇴직연금, 고령화 빈틈 잘 메우느냐가 관건
퇴직연금 수익률 걸음마 수준…투자교육 가이드라인 조차 없어
2017-01-17 14:45:58 2017-01-17 14:45:58
지난해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 10년만에 적립금이 100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2008년말 6조6000억원에 불과했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 2012년말 67조3000억원, 지난해에는 107조1000억원대로 불어났다. 오는 2050년에는 퇴직연금 적립금이 1000조원대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빠르게 늘어나는 은퇴인구와 추락하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고려하면 퇴직연금 제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근로자의 정년이 올해부터 만 60세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퇴직 후 소득은 적정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2008년 6%대였던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지난해 2~3%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퇴직연금 수령방식의 95%가 일시금인데다 원리금보장상품의 비중이 92%에 달하는 등 질적으로도 초기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년 연장에 따라 고령 근로자의 소득대체율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분석했다. 소득대체율은 은퇴 전 소득 대비 은퇴 후 연금 등을 통해 올리는 소득의 비율로 전문가들은 70%를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산한 소득대체율이 현재 55~59세인 사람들은 2.1%포인트 증가한 26.8%, 55세 미만인 사람들은 5.3%포인트 증가한 35.7%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정년 연장으로 근로자들의 연금 납부 기간이 늘면서 소득대체율은 다소 상승하겠지만 여전히 적정 수준의 절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연금소득 시스템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주를 이루고 개인연금은 활성화돼 있지 못하다”며 “미국 등 선진국의 사례처럼 개인연금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에서 세제혜택 등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에도 큰 기대를 걸긴 힘들다. 정치권이 합의를 이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소득대체율 50%는 40년 이상 장기가입자만 해당되는 이야기인데다 지역가입자들이 소득을 실제보다 낮게 신고하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30%대로 내려갈 수 있다.
 
공적연금의 혜택을 아예 받지 못하는 인구도 상당하다. 권문일 덕성여대 교수는 "경제활동 인구 중 공적연금 적용인구 비율은 66.8%에 불과하고 납부예외자도 17.1%에 달한다"며 "약 50%의 인구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현재 출산과 군복무에 대해 운용중인 가입기간산입(크레딧) 제도의 적용 범위와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백혜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금같이 퇴직연금 전환율 4%대가 계속 유지되면 합계 소득대체율은 40%대에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퇴직연금 잘 알지도 못하고 투자한다
 
퇴직연금이 도입된지 올해를 기점으로 11년을 맞았다. 퇴직연금제도가 국내에 처음 도입되면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여자들의 노력으로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퇴직연금과 관련해서 가입자들의 투자교육은 실질적으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투자운용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퇴직연금 도입시기에 비해 가입자 교육측면에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이 단순한 형식화에 치우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장기화된 저금리 저성장 기조로 인해 일하는 시간은 단축되고 은퇴 후 돈 쓰는 시간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퇴 후 노후설계와 금융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김성일 KG 제로인 퇴직연금 연구소장은 "가입자에게 유용한 양질의 금융지식과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행 법령상 가입자 교육 범위를 퇴직자연금에 국한하지 않고 노후설계, 운용될 금융상품의 이해, 자산운용 기초지식, 연금운용 등으로 확대 가입자 교육의 세부지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국내의 연금제도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3층 보장체계를 이루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반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보다 안정적인 생활 보장과 편안한 삶을 위한 대비책이라고 할 수 있다. 평균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은퇴 후 은퇴자산을 관리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이에 따라 금융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퇴직연금 가입자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우선 제도 활용에 위한 제도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운용과 관련된 금융교육이다. 그러나 현행 법령에서 가입자 교육은 퇴직연금 제도 이해 중심의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몇 시간의 단발성 교육이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기업에서는 퇴직을 앞둔 예비퇴직자들에게 퇴직연금의 운용관리에 대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법령에서 가입자 교육내용이 명시돼 있지만 세부적인 교육제공 가이드라인이나 모범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형식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소장은 "구체적으로 가입자교육의 범위를 노후설계를 포함하도록 확대하고 사용자들을 감독하거나 사업자들을 감독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고 교육전문가를 적극 양성하고 교육인프라 측면에서 전담기구의 신설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금융과 관련된 교육이다. 방하남 노동연구원장은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은 금융교육으로 이어져 올바른 금융교육을 전파하는데 있어 순선환을 이룰 것"이라며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대한 금융교육이 조기에 확산된다면 이들이 미리 노후를 준비하고 경제적으로 안전한 노후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은 노후소득보장 장치로서 연금제도의 기능 및 중요성, 은퇴 후 퇴직연금 활용방법, 다양한 적립금 운용상품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각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퇴직연금 선진국 호주를 배우자
 
앞으로 국내의 퇴직연금 제도가 호주의 퇴직연금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한국 퇴직연금 시장 활성화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체투자 등이 활발한 호주는 퇴직연금이 최근 5년 간 연평균 수익률 9.5%로, 국내 3배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어 이처럼 국가.사회의 고령자 사회복지 비용을 줄이는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평가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국내 사업장 퇴직연금 가입율은 20%에도 못 미치고, 초저금리로 수익률은 3% 초반에 머물고 있다"며 "퇴직연금의 안정적인 목표수익률 달성이 중요한 데 호주의 다양한 퇴직연금기금 간 경쟁체제와 인프라투자 등 장기투자 운용경험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호주의 퇴직연금 총자산은 현재 1조5600억달러로, 한국(1100억달러)의 14배에 이른다. 이렇게 자산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배경에는 장기 대체투자 활성화, 투자자 신뢰성 강화 등 노력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날 세미나를 찾은 빌 패터슨 주한호주대사는 "호주는 한국보다 면적은 77배 크지만 인구는 절반 수준에 불과해 장거리를 커버해야 한다"면서 "사회간접시설(인프라)의 수요가 크고, 퇴직연금 등 펀드풀도 크게 조성돼 인프라투자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의 퇴직연금인 슈퍼애뉴에이션은 고용주가 근로자 임금의 9.5% 수준의 기여금을 넣고 있으며, 7~8년 후에는 12% 수준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폴린 바모스 호주퇴직연금협회 회장은 "슈퍼애뉴에이션은 강제성을 지녀 모든 근로자에게 은퇴 후 소득을 제공하고 있다"며 "호주의 은퇴자 가운데 50%가 100% 노령연금을 받는 수급권자이고, 나머지는 부분적 지원과 사적연금제도 등 다양한 소득원천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연금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바모스 회장은 "슈퍼애뉴에이션은 가입 의무화 및 강력한 세제혜택, 개인 기금선택의 자유, 자동투자 상품(디폴트 옵션)의 운영 등으로 성장했다"면서 "한국도 고령화의 막대한 사회 복지비용을 줄위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자.기업.업계.근로자 모두 충분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호주의 대표적 자산운용사인 AMP캐피털은 올해 유망 인프라 투자처로 통신, 공항, 미국 발전설비 등에 주목하고 있다. 또 주식보다 기대수익률이 조금 더 높은 메자닌펀드에서 투자기회가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바모스 회장은 "한국이 고령화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복지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도출과 정책 입안자 기업 업계 모두가 충분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며 "노후생활이 한 사회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전사회적으로 머리를 모아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환은행은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장점과 당행의 성과를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신규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대규모 가두홍보를 서울 을지로입구 전철역 앞에서 실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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