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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마저 후려치기..대형병원 횡포에 제약사 몸살
‘5원낙찰’ 속출..시장형실거래 부작용에 청와대 진정서
2014-02-12 17:13:40 2014-02-12 17:17:40
[뉴스토마토 조필현기자] 우려했던 시장형실거래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터무니없는 약가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시행 후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며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12일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지방의 한 대학병원은 그동안 592원에 공급받던 고혈압 질환 30여개 품목의 약가를 5원에 공급해 줄 것을 제약사들에게 요구했다. 여기에 18개 신규품목을 재등록하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약가를 새로 조정하겠다는 것.
 
의약품 목록 삭제도 이어졌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최근 ‘시장형실거래가 관련 약품목록 변경안내’ 공문을 D제약사에 보냈다. 이달 1일부로 당뇨병과 고지혈증 등 20여 의약품을 목록에서 삭제하고, 신규품목으로 재등록하자는 내용. D제약사는 해당 대학병원과 오는 9월까지 의약품 공급 계약을 맺고 있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형병원들의 약가인하 요구가 도를 넘고 있다. 앞선 사례들은 이달부터 재시행된 시장형실거래가 이후 빚어진 현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몇몇 대형병원에 그칠 것 같던 약가인하 요구가 봇물처럼 줄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형실거래제가 사실상 '갑'의 횡포를 부추긴 셈이다. 
 
시장형실거래가는 의료기관이 제약사로부터 의약품을 보험약가보다 싸게 구매할 경우 차액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돌려받는 제도다. 지난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시행으로 유예된 지 2년여 만인 이달 초 재시행됐다. 제약계의 반발은 병원과 의사들의 로비망을 뚫지 못했다. 합법적 리베이트의 길이 열린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낮은 가격으로 의약품을 구매할수록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형병원들은 터무니없는 약가인하 요구를 하고 있다”며 “‘제약사가 싸게 안 팔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형병원과는 절대적인 갑을 관계로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 같은 요구를 제약사들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거부한 제약사의 의약품 원내 코드를 삭제하는 등 대형병원들의 보복이 이어질 수 있어 우려는 공포로 비화됐다.
 
◇한국제약협회 등 6개 관련단체들이 시장형실거래 폐지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조필현 기자)
 
이 같은 부작용에 대형병원들은 별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합법적 정책 틀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실제로 문제가 심각하다면 제도 보완을 통해 개선 방안을 찾으라는 얘기다. 애꿎은 곳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말라는 항변도 이어졌다.
 
대학병원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제도 틀 안에서 의약품 인센티브를 받기 위한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남들 다 하는 데 우리만 안 하면 바보라는 얘기도 있다”며 “제약업계는 병원계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먼저 정부를 설득해 제도 보완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시행 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장형실거래가를 재시행한 이유는 보험 재정을 충당하자는데 주목적이 있다”며 “제약협회와 이러한 문제를 놓고 논의하고 있다”고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했다. 현재 복지부와 제약협회는 시장형실거래가제 재시행과 관련해 협의체를 구성, 오는 13일까지 논의를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제약업계에서는 정부가 쌍벌제로 리베이트 길이 막힌 대형병원과 의료계에 시장형실거래제라는 합법적 대안을 찾아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불러온 단가 후려치기가 약가 후려치기로 비화됐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한국제약협회, 다국적의약산업협회, 한국의약품도매협회 등 3개 단체는 이날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 모든 관계기관에 시장형실거래 제도 폐지촉구 진정서를 제출했다.
 
3개 단체는 진정서에서 “대부분의 국공립 병원을 비롯한 다수의 병원에서 불공정행위를 하고 있다. 2원, 5원, 10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의약품 공급을 강요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며 “의약품의 건전한 유통질서가 붕괴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기반이 저해돼 우리나라 제약산업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는 불공정 행위를 근절시켜 올바른 의약품 공급질서가 구현될 수 있도록 조치하기 위해 진정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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