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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요소수와 인문학 정부
2021-11-19 06:00:00 2021-11-19 06:00:00
요소는 오줌의 주요 성분으로,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의 대사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질소를 포함하는 단백질은 생명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생물은 끊임 없이 단백질을 흡수해야 살아갈 수 있다. 환경에서 질소를 고정하는 방식은 식물과 동물의 큰 차이 중 하나다. 동물은 먹이에서 질소를 흡수해 살아가며, 이를 요소, 요산, 암모니아 등으로 배출한다. 인간은 요소를 배출하는 일반적인 육상 척추동물에 속한다. 물고기와 파충류 및 조류는 암모니아와 요산으로 질소 부산물을 배출하도록 진화했다. 
 
요소는 생물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물질이다. 1828년 요소를 처음 실험실에서 합성한 화학자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뵐러다. 생물학이 여전히 생기론에 빠져있던 19세기 초, 기체를 연구하던 화학자 중 일부는 생명의 호흡과 순환 등에 관심을 갖고 산소와 질소 등의 물질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화학자가 프랑스의 라부아지에와 영국의 조셉 프리스틀리 등이다. 이들에 의해 시작된 생리화학의 전통은 독일로 넘어가 유기화학이라는 전통을 탄생시키는데, 그 대표적인 학자가 리비히와 뵐러다. 
 
화학비료를 만들어 독일의 과학자 중 널리 기록된 리비히와는 달리, 뵐러는 그리 널리 알려진 화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시안산암모늄으로부터 요소를 합성한 뵐러의 실험은 과학계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당시 여러 생기론자들이 생명의 특수성을 주장하던 근거가, 유기물의 합성은 생명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뵐러는 유기물을 생명체가 아닌 시험관에서 합성함으로써, 생명현상이 화학반응의 일종임을 증명했다. 
 
뵐러의 시도에도 생기론은 20세기까지 건재했다. 생리학이 생기론을 벗어나 견고한 과학의 일원으로 편입된 과정은 복잡하지만, 생기론을 극복하려는 여러 시도들을 통해 생물학이 물리학과 같은 지위를 획득한 것도 사실이다. 뵐러가 세포 밖에서 유기물의 합성이 가능함을 보였다면, 1924년 오파린은 뵐러의 실험을 확장해서, 초기 지구의 환경을 재현해 번개와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의 합성이 가능함을 보인다. 생물학은 뵐러의 요소합성 실험 이후부터 생명의 특수성을 초자연적인 관념으로부터 벗어던졌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뵐러의 요소 합성 소식을 듣고, 화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그의 작품 파우스트에 작은 인간 호문쿨루스를 등장시켰다. 요소의 합성은 유기화학의 탄생을 알린 신호탄을 넘어, 생물학의 진로를 바꾼 사건이었던 셈이다.
 
요소는 비료로도 사용된다. 식물은 외부의 질소를 고정하기 위해 박테리아와 공생을 하는데, 그만큼 질소의 공급이 식물의 생존에 필수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농부들은 번개가 치면 농사가 잘된다는 경험칙을 알고 있었는데, 이는 번개가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식물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뵐러의 동료였던 리비히는 식물의 생장에 질소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응용해 ‘구아노’라는 화학비료를 만들어 유럽에 농업 혁명을 일으켰다. 질소화합물인 요소는 질소비료로 사용되며, 생산되는 요소의 90% 이상이 모두 비료용이다. 요소수는 농업용 요소보다 더 깨끗하게 정제된 요소와 물을 섞어 만든다.
 
요소수 사태로 청와대의 부실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10월11일 중국 관세청의 요소 수출전 검사 의무화 고시 이후 11월2일 관계 부처 첫 합동 회의가 개최되기까지, 무려 20여일 동안 청와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김부겸 총리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요소수로 터진 이 사태는 결코 웃으며 넘길 사안이 아니다. 여당과 야당이 정쟁으로 정치의 수준을 낮출지라도, 행정부인 청와대는 정치적 편향 없이 국민의 삶에 중요한 사안들을 챙겨야 했다. 미중의 패권경쟁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본의 수출규제가 터진 게 얼마전의 일이다. 당장의 위험만 넘기면 된다는 한국 관료주의의 습관은 이번 요소수 사태에서도 다시 드러났다. 청와대는 관료 탓을 하고, 관료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문제는 도대체 청와대가 지난 5년 동안 뭘 했느냐는 것이다.
 
관료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요소수 사태는 인문학 정부인 문재인 청와대가 그동안 보여준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와 무능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베이징의 KOTRA 직원 중 그 누구도, 요소수의 중요성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들은 요소라면 으레 비료 문제라고 생각했고, 중국 관세청의 고시를 농업과 관련지어서만 정부에 보고했다. 보고서 제목이 ‘중국 비료 및 요소 수출 규제 관련 조사’였으니, 청와대가 이 문제를 비료 문제라고 착각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KOTRA의 보고를 받은 산업통상자원부의 그 누구도 10일의 골든타임이 넘는 동안 요소수 문제에 대해 아무런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내노라 하는 스펙의 수재들이 모인 정부부처와 청와대의 그 누구도, 요소수가 한국 유통업의 숨통을 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정부 부처의 곳곳에 과학기술과 산업계 현장을 아는 이들이 포진해야 하는 이유다.
 
현장은 달랐다. 요소수를 수입하는 업체와 운송업자들이 자주 들르는 보배드림 사이트에는 청와대가 사태를 깨닫기 훨씬 전부터 요소수 사태를 예견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니 요소수 사태는 단순히 인문학 정부가 과학기술에 무지해 생긴 사태라기보다, 청와대에서 국민 삶의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소통의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수장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소상공인들에게 보이는 태도 이면엔, 이번 요소수 사태에서 나타난 소통의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요소수 매점매석을 탓하는 청와대는 스스로를 무능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있다. 
 
청와대는 한국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권력이 무능해지는 건 쉽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과 과학기술의 국제적 경쟁력 문제에서 보여주는 문재인정부의 무능은, 분명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이미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요소수 문제는 요소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희토류는 물론 전세계가 돌입한 자원전쟁에서 우리는 어떤 준비가 돼 있는지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물어야 한다. 청와대와 대통령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 우리를 배부르게 만든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이름 모를 이들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 민주화의 성지를 참배하고, 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처럼, 과연 우리는 그들의 업적을 대우하고 있는가. 이제 곧 인문학 정부는 마무리 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정부는 결코 인문학 정부의 무능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과학기술을 무시하는 그 어떤 정책도, 현대사회에선 무능을 초래할 뿐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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