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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야누스, 블루문…‘재즈 성지’ 지키고 싶어요”
30대 재즈 뮤지션 기획 프로젝트 ‘한국재즈수비대’
세대 초월 41명 연주자 섭외…크라우드 펀딩으로 앨범 제작
라이브클럽 8곳 단상 담은 곡들 “한국 재즈 부흥 운동”
2021-11-05 00:00:00 2021-11-05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재즈 성지’ 야누스를 지키기 위해 그 오랜 기간 얼마나 외롭고 무던히 싸우셨을까... 감히 상상해봤습니다.”
 
3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야누스 간판 아래 선 재즈 베이시스트 박한솔(35), 피아니스트 이하림(30)은 고 박성연(1955~2020)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고 잠시 숙고했다.
 
‘한국의 빌리 홀리데이’로 불린 재즈계 대모. 1978년 고인은 재즈 불모지였던 국내에 최초 토종 재즈 라이브 클럽 야누스를 열고 연주자들이 설 무대를 만들었다. 
 
대중들 기호에 맞는 음악적 타협을 하지 않은 탓에 긴 세월 재정난과 싸워왔다. 2012년 고인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 소장해온 음반 전부를 경매로 처분해 주변의 안타까움도 샀다. 2015년부터 후배 재즈 보컬 말로는 이 공간을 이어받아 꾸려오고 있다.
 
3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야누스 간판 아래서 만난 재즈 베이시스트 박한솔(왼쪽), 피아니스트 이하림.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야누스를 비롯해 팬데믹 장기화로 국내 재즈의 ‘산실’ 역할을 하던 주요 라이브 클럽들이 위기에 직면해있다. 지금은 폐업한 홍대 팜, 압구정 원스인어블루문(블루문)을 비롯해 부산 몽크처럼 잠정적으로 영업을 중단한 곳들도 적지 않다. 
 
이에 지난해 10월부터 박한솔과 이하림 주축으로 기획 프로젝트 ‘한국재즈수비대’가 결성됐다.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초월 연주자 41명을 섭외하고 앨범과 유튜브 콘텐츠(채널 ‘재즈에비뉴’와 협업), 굿즈를 제작하고자 텀블벅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모금 종료일을 보름가량 남긴 상황에서 이날 기준 모금 달성액은 약 950만원. 목표금액 600만원을 훌쩍 뛰어넘은 규모다. 
 
“이 극심한 시기에도 세대를 초월해 재즈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야누스부터 이어져온 한국 재즈신의 정신이자 문화 아닐까 싶어요.”(박한솔) 
 
지난달 28일 발매된 한국재즈수비대 첫 앨범 ‘우린 모두 재즈클럽에서 시작되었지’에는 총 8곡이 수록됐다. 각 재즈클럽 공간에 얽힌 뮤지션들 사연을 다양한 장르로 풀어냈다.
 
한국재즈수비대 첫 앨범 ‘우린 모두 재즈클럽에서 시작되었지’. 사진/한국재즈수비대
 
첫 곡 ‘All That Blues’는 영화 ‘시카고’ OST ‘All That Jazz’에 착안한 흥겨운 스윙 재즈곡. 남성 재즈 드러머로 활동 중인 박재준이 스틱 대신 마이크를 쥐었다. 갈라지는 중저음 성대가 흡사 록 음악의 거칠고 날 것 같은 박동을 불어넣는다. “영화 ‘시카고’에 이태원 재즈카페 ‘올댓재즈’를 대입해봤어요. 신인 재즈 피아니스트로 처음 그 무대에 올랐던 그 순간을 되새기면서요.”(이하림)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은 “한국의 모든 재즈 클럽을 위해 쓴 스윙 곡”이다. 피아노 타건, 희망적 가사가 밝은 물결처럼 흘러간다.
 
‘우연히 찾아갔던 작은 공간에서 만난 연주가 날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가 않지만 난 늘 이곳에서 노래하고 있었지’
 
“우리 모두 재즈에 목숨을 건 연주자들이거든요. 조그만 클럽에서 음악의 꿈틀거림을 느꼈고, 그 작은 가치를 위해 끝까지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한국 재즈신에도 이제는 부흥 운동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박한솔)
 
재즈 베이시스트 박한솔, 피아니스트 이하림. 사진/한국재즈수비대
 
5번 트랙 ‘에반스 잼데이에서 만난 우리가 만든 노래’는 피아노 조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테이크 녹음을 진행했다. 실제 클럽에서 막 연주한 듯한 ‘날 것’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녹음 뒤 흐느끼며 우는 동료도 있었어요. 그동안 ‘괴물’처럼 변한 자신을 본 것 같다면서요.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사실 재즈거든요.”(박한솔)
 
박한솔은 첫 리더 작을 연주했던 홍대 팜 무대 시절 기억을 ‘서교동 야자수’라는 2번 트랙에 담았다. 이하림은 3번 트랙 ‘Monk‘s Dream’에 부산 몽크의 기억을 풀어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답을 내리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몽크에서 즉흥연주를 보고 꽂혀 버렸어요. 재즈가 제 삶을 붙잡아준 셈이죠.”(이하림)
 
마지막 곡 ‘야누스, 그곳은 처음의 나무’는 어제와 오늘, 한국 재즈신을 잇는다. 실내악적 분위기의 재즈 발라드 넘버. 날숨으로 시작하는 곡은 기타 아르페지오에 부드럽게 젓는 브러쉬스틱, 이를 감싸는 피아노선율과 콘트라베이스 리듬이 합쳐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박한솔과 이하림 주축으로 기획 프로젝트 ‘한국재즈수비대’. 사진/한국재즈수비대
 
“어느 날 인상적인 기사를 읽었어요. 한 그루 나무에서 시작된 야누스가 한국 재즈라는 큰 숲을 형성했다고... 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직접 클럽들을 찾아다녔는데 ‘우리를 잊지 않아줘 고맙다. 모두 다시 모이자’ 하시며 울컥 하신 분들도 많았거든요. 재즈신에도 앞으로 이런 시도들이 많이 이뤄졌음 하는 바람이에요.”(박한솔, 이하림)
 
오는 26일에는 서교동 ‘문악HOM’에서 이번 신보를 실연하는 음악감상회도 열 예정이다.
 
“사람마다 재즈를 통해 찾는 각자의 의미가 있을 거예요. 재즈 자체가 자유로운 음악이잖아요. 각자의 해석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박한솔, 이하림)
 
3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야누스에서 만난 재즈 베이시스트 박한솔(왼쪽), 피아니스트 이하림.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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