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기자의'눈')사과는 상대의 눈높이에서
2021-11-04 06:00:39 2021-11-04 06:00:39
온라인상에는 '사과문을 올바르게 적는 방법'이라는 유명한 '짤(이미지)'이 있다. 여기엔 사과문에 '들어가야 하는 것'과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나열돼 있다. 사람들은 사과문에서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책임질 생각인가"를 꼭 보고 싶어 했고, "본의 아니게",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는 보고 싶지 않아 했다. 사과문을 직접 볼 일이 많아졌지만, 뭔가 '찜찜하지 않은' 사과문을 보기 힘들다 보니 오죽하면 이런 게 돌아다니는가 싶다.  
 
지난 1일 KT가 전국적 통신 장애에 대한 보상안을 공개했다. 사태 일주일만이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약관 외 보상, 장애 시간의 10배를 적용한 보상이라지만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건 "밥값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KT 입장에서는 총액만 400억원 규모에 추가 보상 여지까지 남아있어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지만, 피해자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3일 관련 기자회견에서 "KT의 보상안은 최소한의 노력이 아닌 국민들에 대한 우롱이자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꼬집기까지 했다. 
 
사실 금전적 보상은 각자 상황이나 피해 산정 등 문제로 서로 셈법이 달라 그 적합성을 따지기 힘들다. 그러나 '돈' 이전에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다.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가"와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책임질 생각인가"는 말하지 않고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을 반복하는 KT에 피해자들은 냉소하는 것이다. 
 
KT는 지속해서 이번 사태가 '예외적인 일탈'이었음을 강조한다. 자신들의 관리·감독 부실을 인정하면서도, 협력사에 구상권 청구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본의아니게 발생한 사고였음을 피력한다. 1만건이 넘는 피해 접수에서 어떤 사례가 있었는지, 얼마나 다양한 피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식당의 결제 오류, 주식 거래 불가 사태 외에도 불편하고 마음 아픈 일이 많다. DMZ 인근에 거주하는 한 KT 고객은 갑작스레 인터넷이 끊기니 정말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무서웠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접수받는 국가자격증 시험 신청을 놓친 이도 있다. 화상 면접이 끊겨버린 취준생도 있다. 이런 고객을 일일이 살펴보는 세심한 반성은 없었다. 현 상황에서 '최선'이었다거나 아현사태 때보다 보상 규모가 더 크다는 변명은 있었다. 
 
3년 전 아현국사 화재 당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짐했던 KT를 고객들은 믿었다. 그런데 결국 똑같은 문제가 또 발생했다. KT의 보상안을 본 홍춘호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정책위원장은 "이런 일에는 공염불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 또 다시 결제 중단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보상하겠다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도 "신뢰를 상실한 KT에 대해 위약금 없이 통신서비스를 해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위원장이나 김 의원의 말처럼 고객들이 KT에 원하는 진정성 있는 사과는 "앞으로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이다. 당장 이 사태에 대한 손실보상뿐만 아니라 유사사태 재발 시 또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는 거다. 재발방지대책 마련이나 십수년 전 기준으로 만들어진 '약관 개정'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고객들에겐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약속'이 필요하다.
 
배한님 중기IT부 기자(bhn@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