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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낙원의 밤’이 담아 낸 폭력과 공간의 양가적 시선
‘낙원’ 제주 배경 서늘함과 처연함 그리고 외로움 담아낸 미장센
‘박훈정 누아르’ 뚜렷한 장단점, 공간 배경 캐릭터 ‘치환’ 압도적
2021-04-07 00:00:02 2021-04-07 00:00:0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낙원의 밤은 박훈정 감독 신작이다. 이 영화를 설명할 때 박훈정이란 이름 석자가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 국내 장르 영화 창작자로선 꽤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연출자다. 몇 개의 얘기를 시리즈화 시키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세계관을 창작해 나가고 있다. 그의 손에 탄생한 여러 영화 가운데 신세계마녀가 대표적이다. ‘마녀는 속편이 제작 중이다. ‘신세계는 국내 누아르 장르 대표작으로 불린다. 이외에 대호’ ‘브이아이피’ ‘혈투등 박훈정 감독은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다기 보단 작품 색깔을 극대화 시키는 스토리에 탁월한 장기를 드러내왔다. 그런 박훈정 감독이 내놓은 신작 낙원의 밤은 지금까지 그가 선보인 작품들 장점을 뒤섞은 새로운 지점을 담아냈다. 물론 그 안에서 박훈정 감독은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들 속 단점 역시 또 한 번 뚜렷하게 드러내는 아이러니도 담아냈다.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면서도 박훈정이란 이름 석자 인장은 앞선 전작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또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작품으로 낙원의 밤이 주목될 것 같다.
 
 
 
낙원의 밤을 누아르로 해석하면 박훈정 감독 전작 신세계와 비슷한 결에서 봐야 할 지점이 드러난다. 누아르 장르가 필연적으로 점층적 구조를 통해 폭발시키는 과정을 담아내야 한다면, ‘낙원의 밤은 정반대다. 점층적 구조로서 안으로 삼켜가는 독특함이 흡입력을 갖는다. 막다른 길에 몰린 한 남자와 생의 마지막에 선 한 여자가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낙원의 밤은 그걸 뿜어내게 하지 않고 안으로 끌어 당겨 버린다. ‘낙원이란 단어가 가진 이중성과 중의로서 그 당김을 대체한다. 모두에게 낙원으로 불린 그곳이 그들에겐 생의 마지막을 마주할 절벽인 셈이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넷플릭스
 
낙원의 밤속 인물들은 처연하다. 그들은 모두가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태구(엄태구)는 조직의 에이스였지만, 상대 조직간 이해 관계 속에 희생양이 됐다. 뜻하지 않게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그다. 그 분노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만들어 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주도로 향한다. 그 곳에서 재연(전여빈)을 만난다. 러시아로 밀항을 계획하던 태구가 제주도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자신의 조직 보스 양사장(박호산)의 지인인 무기밀매상 쿠토(이기영)에게 의탁하게 된다. 재연은 쿠토의 하나뿐인 조카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넷플릭스
 
태구는 자신의 상대 조직이면서도 거대 조직 북성파 도회장을 처단했다. 하나뿐인 누나와 조카가 사고로 숨졌다. 도회장 짓이라고 확신했다. 복수에 성공한 태구는 삶의 목적도 의욕도 없다. 제주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재연과 일상을 마주한다. 재연도 삶에 의욕이 없긴 마찬가지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재연은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사연이 있어 보인다. 무기밀매상 삼촌 덕분일까. 총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하지만 때때로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눈다. 태구가 놀란다. 하지만 그 뿐이다. 재연은 심드렁하다. 둘은 그렇게 기묘하지만 일상이란 줄기 속 잔가지처럼 얽히고 설키면서 고요한 심연 속 흐름처럼 조용히 감정을 섞어 나간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넷플릭스
 
하지만 폭풍전야다. 며칠의 일상은 그랬다. 북성파 2인자 마상길 이사(차승원)가 양사장 조직을 궤멸시킨다. 양사장은 결국 태구를 마이사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자신의 조직 보전을 약속 받는다. 마이사와 양사장이 제주로 온다. 태구와 재연은 이제 마이사와 양사장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낙원의 밤은 차갑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처연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의 기운을 뿜어낸다. 온통 푸른 빛이다. ‘낙원의 밤속 세계는 파랗다. ‘파리한인물들의 감정을 극대화 시킨다. 낯빛에서 느껴지는 이런 감정은 인물들의 본질이다. 복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후부터다. 태구의 이런 모습은 목적 없는 삶에 대한 자세로 전환된다. 살아가야 할 동력을 잃은 그에게 바다 한 가운데 섬 제주는 그런 곳이다.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모를 떠도는 신세가 될 태구의 마음을 다 잡아 줄 공간이 아니다. 그런 태구의 감정을 더욱 더 침잠시키는 수렁 같은 곳이다. 태구를 제주로 향하게 만든 감독의 영화적 명령이 너무도 잔인하게 다가온다. ‘낙원이라 불리는 제주가 누군가에겐 쓸쓸하고 외롭기만 한 낙원(落園)인 셈이다. 공간과 배경을 캐릭터로 치환하고 스토리로 끌어 가는 방식은 박훈정 감독 작품 가운데 단연코 최고이며, 누아르 장르 속에서도 상당히 빼어난 방식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넷플릭스
차갑고 쓸쓸하고 외로운 낙원이다. 하지만 태구와 재연에겐 서서히 감정의 ’()을 키워주는 역설적 공간이기도 하다. 막다른 절벽에 몰린 두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에서 삶의 기운을 찾는 과정은 그래서 제주란 공간이 가진 감독의 양가적 시선을 상징한다. 결과적으로 낙원의 밤이 박훈정 감독이 언제나 그리는 끝과 끝의 상징을 대비시켜 축약시킨 공간의 상징성을 대표하는 지점처럼 다가온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넷플릭스
 
낙원의 밤은 감정적으로 휘몰아치고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잔인함보단 오히려 처연할 정도로 관망하는 지점이 더 강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서늘함이 도드라진다. 마이사의 비정함과 인간미가 공존하는 지점도 그래서 기묘할 정도로 매치가 된다. 잔인할 정도의 치졸함을 그려낸 양사장의 이미지도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촉매제다. 액션 강도는 박훈정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담은 유일한 약점도 앞선 박훈정 감독 스타일 집대성이란 장점의 반대급부다. 끝과 끝의 상징을 대비시켜 축약하는 얘기를 즐기는 감독 스타일이 고스란히 단점으로도 드러난다. 얘기를 매조지하는 방식이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정형화된 스타일을 고수한단 점이다. ‘낙원의 밤결말을 보고 있으면 박훈정 감독이 관심을 두는 스타일과 방식을 또 다시 예상케 한다.
 
영화 '낙원의 밤' 스틸. 사진/넷플릭스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담은 박훈정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아직도 완성되지 않고 있다. ‘낙원의 밤은 그 완성의 문턱 어딘가에 다다른 박훈정 스타일의 또 다른 집대성이다. 오는 9일 넷플릭스 공개.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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