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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분갈이를 하며
2021-04-02 06:00:00 2021-04-02 06:00:00
봄을 맞아 거실과 베란다에 있는 식물에 분갈이를 해주었더니, 새로운 생명이 일어난다. 무엇보다 내 가슴을 설레게 한 것은 해피트리라는 나무의 새잎들이다. 큼지막하게 자란 이파리들, 그 틈을 거뜬히 뚫고,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그 어린 싹들이 조금씩 돋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보고 또 보았다. 놀랍다. 어떻게 그 큰 이파리의 무게와 공간을 헤치고 돋아났을까. 새순이 돋아났다고 해도 과연 제대로 자라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였지만 기우다. 참 잘 자란다. 허공을 잘도 걸어 올라간다. 어느 순간 빈 공간을 장악한다. 마치 혁명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거침없이 올라간다. 이제는 또 하나의 자신의 튼실한 나라를 건설 중이다.    
 
그 옆에는 지난달 나의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은사님께서 보내주신 호접란도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난과 함께 심어진 홍콩야자도 새순을 드러내며 앞으로 장수(長壽)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베란다에 새롭게 정착한 무화과나무, 카피라, 그리고 상추 모종과 고추 모종에도 생명의 기운이 풍성해진다. 덩달아 거실과 베란다에 살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 공간으로 수시로 찾아오는 햇살, 아 얼마나 따사로운 봄 손님인가. 열린 창문으로 봄바람도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생명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분갈이. 그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화분에 심은 풀이나 나무 따위를 다른 화분에 옮겨 심는 것이라고 검색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분갈이를 하지 않은 화분은 통풍이 나쁘고 물이 고인 채로 흘러나가지 않아 뿌리가 썩어 식물이 잘 성장하지 못하거나 고사할 수 있다는 설명도 보인다. 따라서 일정한 때가 되면 분갈이를 하여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분갈이를 하면서, 봄의 화분들을 어루만지면서, 문득 스치는 생각. 아, 우리 인간도 분갈이하듯 아프고 상처 났던 부위를 덜어내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아 주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까. 튼실한 면역 체계를 갖출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봄이 되면 한 번씩 우리 몸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하지만 분갈이처럼 우리 몸을 다시 한번 정비해줄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우리 인간의 소박한 준비가 아닐까. 꽃이 피고 새순이 돋으니 마치 무병장수의 꿈도 영그는 듯하다. 
 
사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제때 분갈이를 해주지 않아 고사시켰던 몇 개의 화분이 있었다. 분갈이에 관심이 없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다. 동백도 있었고 카피라도 있었다. 오래전 귀한 손님께서 사다 주신 동백은 잘 자라주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길렀는데, 고사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때의 무관심이 후회스럽다. 이제야 식물 키우기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니,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고마운 것은 이번에 분갈이를 준비하며 꽃집 주인에게 들었던 말이 자꾸 가슴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는 것. “식물도 계절이 되면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하고, 필요하면 거름도 주어야 합니다.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공간도 맞지 않으면 옮겨줄 필요가 있지요.”        
 
한편, 텔레비전에서도 개화 소식을 내보내고 있다.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의 개화소식과 함께, 벚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올해 벚꽃의 개화가 99년 만에 가장 빠르다는 보도는 왠지 그리 반갑지 않게 들린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지구 온난화를 몸소 체험하는 벚꽃의 기분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더하여 그렇게 서둘러 피는 벚꽃을 마음대로 구경할 수 없는 작금의 현상도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가장 뼈아픈 일은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두기뿐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식물과의 거리두기도 그 하나다. 꽃을 배경으로 서로가 어울려 꽃에 취하고 사람에 취했던 날들이 그리운 추억으로 스며든다. 또한 이러한 추억을 당분간은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은 쓸쓸하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그 기세를 떨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3월을 떠나보내는 시간의 중심에 서서, 아, 제발 4월은 잔인한 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기도처럼 되뇌어본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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