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준익 감독은 자신을 ‘중구난방’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이 자신을 부르는 ‘사극 대가’란 타이틀에는 실제로 약간의 불쾌함까지 담아 손사래를 친다. 연출 데뷔작 ‘키드캅’부터 영화 관계자들에겐 ‘진정한 1000만 영화’로 불리는 ‘왕의 남자’ 그리고 흑백 미학의 절정으로 불린 ‘동주’, 역사의 실체 속 숨은 관계를 끄집어 낸 ‘사도’, 사회가 공분을 일으킨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소원’ 등. 사실 이준익 본인의 말처럼 그의 영화적 색깔은 ‘중구난방’인 게 맞다. 대부분은 ‘사극 대가’ ‘사극 거장’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이런 자신의 영화적 색깔을 오히려 ‘사극’과 ‘대가’란 두 단어가 가둬 버리는 것 같다며 크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가 이렇게 ‘중구난방’을 고수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서 있는 ‘현재’를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는 세상에 공개될 때마다 공교롭게도 그 시대 사회 흐름과 빗대어 해석이 되고 주목이 된다. 그것도 이준익 감독이 원한 것은 아닐 듯싶은 데 말이다. 그저 그는 ‘꽂히면 한다’는 이 감독의 작품 선택은 이번엔 ‘자산어보’를 주목했었다. 조선시대 ‘어류도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는 다른 얘기를 끄집어 냈다. 이준익을 ‘중구난방’이라고 우리가 감히 부를 수 있을까. ‘자산어보’를 본 뒤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일 뿐일 것 같다. 바로 본인 자신이다. 그런 이준익 감독에게 ‘자산어보’에 대한 궁금한 몇 가지를 물어봤다.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얼핏 보고, 자세히 봐도 제목이 너무 어렵다. ‘자산어보’는 들어본 관객은 알고 있을 것이고, 모르는 관객은 도대체 감을 잡기 힘들다. 조선 정조시절부터 순조 때까지 실재했던 실학자 정약용의 친형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시절에 집필한 어류도감이다. 정약용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 중 가장 뛰어난 천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 정약용의 인생에서 가장 영향력을 준 멘토가 바로 친형 정약전이다. 이준익 감독은 누구나 다 아는 정약용이 아닌 그의 친형 정약전에게 눈길을 돌렸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세상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죠. ‘목민심서’는 그 시절 공무원들의 행동지침 사항을 서술한 책이에요. 사실 읽기도 힘들어요. 어렵고. 그런데 ‘자산어보’는 굉장히 쉽죠. 물고기 얘기에요(웃음). 근데 정약용에게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이 정약전이에요. 도대체 정약전은 어떤 인물일까 싶었죠. 기록도 별로 안 남아 있어요. 2시간 분량 영화로 그를 조명해보자 싶었죠. 딱 맞아 떨어질 듯 했어요.”
그의 눈에 정약전이 보였다. 그리고 장르는 필연적으로 사극이 됐다. 이준익이란 감독이 제일 잘하고 가장 잘하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사극을 그렇게 많이 찍어 본 이준익 감독도 ‘자산어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역사의 주인공, 즉 ‘인싸’(인사이더)들의 얘기다. 하지만 ‘자산어보’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은 역사의 ‘아웃사이더’ 즉 ‘아싸’들이다. 그의 연출 작법 자체부터 달라져야 했다.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아주 중요한 질문이에요. ‘자산어보’는 선비와 민초들이 주인공입니다. 영웅도 나오지 않죠.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을 그리기 위한 인문학적 토대가 분명히 필요했어요. 사극을 정말 많이 했지만 가장 건들기 힘든 지점이 조선의 근대성이었어요. 건드려야 할 게 너무 많아요(웃음). 해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안 났죠. 근데 사건이나 국가의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거기서 등장한 첫 번째가 동학, 그리고 나아가니 서학 그리고 또 북학이 있어요. 그 안에서 보인 게 ‘자산어보’였고 ‘정약전’이었죠. 공부를 통해 그 시절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가능할 것 같았죠.”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를 보고 있으면 실제로 ‘정약전’이란 인물이 더 없이 대단해 보인다. 영화로서 작화가 이뤄졌고, 창작이 어느 정도 가미됐지만 조선 사대부 가운데 최고 명문가 집안 출신, 여기에 조정 최고 대신 중 한 명이던 정약전이다. 반면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의 조력자 ‘창대’는 흑산도 어부다. 양반 가문 서자 출신이지만 사실상 천민이나 다름없다. 둘은 사제 지간을 넘어 친구 이상의 관계를 형성한다. 실제에 기반한 창작이다.
“약전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지점이 그거에요. ‘자산어보’ 서문에도 실제로 ‘창대가 이렇게 말했다’라고 정확하게 기술돼 있죠. 무려 200년 전 조선시대, 아무리 유배를 왔다지만 조선 최고 양반이 상놈의 이름을 싸 준 거에요. 그 자체가 바로 제가 주목하고 싶었던 근대성 아닐까요. 수직적 신분 체계 속에서 수평적 사고 방식이 기술된 게 ‘자산어보’에요. 이분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던 분일까 싶었죠.”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렇다고 하지만 사실 단순하게 정약전의 근대적 사고방식만으로는 설명하기 불가능한 지점이 있었다. 비록 영화이지만 정약전이 왜 그토록 창대를 아끼고 또 그를 제자 이상으로 받아 들이고 관심을 뒀는지 말이다. 반평생 보이지 않는 이념을 논한 ‘성리학’에 목을 맨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과 반성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이 이준익 감독의 눈엔 보였을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과 반성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 눈에는 창대를 통해 동생 약용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선을 본 것은 아닐까 싶었죠. 특히 함께 서학에 눈을 뜬 조카 사위 황사영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싶은 것도 있어요. 영화에선 황사영 분량이 작지만, 역사적으론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불과 20세에 능치처참을 당해 죽으신 분이에요. 글쎄요. 창대가 황사영의 길을 걷진 않을까 걱정이 됐을 것 같아요.”
이런 복잡하고 또 깊은 사상적 내면을 담아낸 정약전을 연기해야 할 배우는 도대체 누가 있었을까. 설경구가 그 인물을 연기했다. 연기력에서 당대 최초의 실력자 중 한 명이 바로 설경구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정형화된 캐릭터만을 연기해 온 ‘배우’다. 이준익 감독이 원하는 정약전은 역사가 기술하지 않은 그 이면의 모습이었다. 물론 설경구는 그런 이준익 감독의 의도를 200%이상 그려냈다.
영화 '자산어보' 현장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는 기본적으로 배역을 형상화 시키려 설계를 하죠. 깡패? 형사? 실제 그 인물과 인터뷰를 통해 경험담을 듣고 머리로 그립니다. 하지만 사극 속 인물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으니 설계의 부족함은 당연하죠. 정약전? 뭘 어떻게 해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을 하게 돼 있어요. 정약전을 실제로 만나서 ‘그때 어땠냐’고 물어 볼 수도 없고(웃음) 설경구에게 한 말은 딱 하나였어요. ‘뭘 만들려고 하지 말아라’라고. 당연히 설경구이니 정확하게 그걸 알고 있었죠.”
설경구의 ‘정약전’이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실존 인물 ‘정약전’을 만들어 내는 고충이 있었다면 그의 상대역 변요한이 만들어 낸 ‘창대’는 더욱 더 힘들고 곤욕스러웠을 터. 그저 이름 두 글자 ‘창대’만 실재했을 뿐이다. 감독인 이준익이 변요한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오롯이 변요한 스스로가 만들어 내고 그걸 감독인 이준익은 받아 써야 하는 입장이었다.
“변요한 캐스팅 제안은 설경구의 제안이었어요. ‘감시자들’에서 한 번 만났는데 괜찮은 배우라고 추천을 해줬죠. 글쎄요. 개인적으론 정보가 부족한 상태였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너무 잘 들어 맞았죠. 그냥 ‘창대’였어요. 그 시절 정말로 창대는 그랬을 것 같았죠. 촬영 기간 동안 태풍이 세 번이나 왔는데 변요한은 단 한 번도 집에 가지 않고 숙소에서 지냈어요. 그냥 창대 안에서 온전히 살아왔어요. 대단한 배우에요.”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은 ‘동주’ 이후 다시 한 번 ‘자산어보’에서 흑백을 끌어왔다. ‘동주’에서의 흑백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시기를 그려내는 데 가장 적절한 장치였고 도구였다. 반면 ‘자산어보’에서의 흑백은 수묵화 속 여백의 미를 그려내듯 밝고 환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죽음의 다른 말인 ‘유배’ 생활이 거의 대부분인 정약전의 그 시절을 이준익 감독은 흑백의 ‘백’을 이용해 그려냈다.
“동주’에서의 흑백은 결도 너무 거칠었죠. 제작비도 5억에 불과했고. 촬영 카메라도 결혼식장에서 쓰는 그런 카메라로 썼고, 어떤 장면에선 조명을 촛불로 쓰기도 했어요. ‘동주’는 만들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었죠(웃음). 흑백이 과거의 장치로 불리는 게 안타깝죠. 이젠 흑백이 옛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된 것에 너무 감사하고 뿌듯해요. ‘자산어보’의 흑백은 색을 빼앗은 게 아니라 진짜 색인 그 시절 자체를 담아내는 데 최고의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건 보시는 관객 분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전 그런 생각으로 찍었지만 받아 들이는 관객 분들의 몫이 진짜 정답인 것처럼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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