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인터뷰)‘자산어보’가 깨운 변요한의 잊혀졌던 ‘뜨거움’
“흑백 궁금증, 첫 촬영 이후 눈에 띤 디테일…‘거짓말 하지 말자’ 다짐”
“그 시절 창대가 세상 바라보는 방법 고민, 감독님 ‘조언’ 큰 힘 얻어”
2021-03-29 00:00:01 2021-03-29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변요한은 정말 희한한 배우다. 작품 속에서 자신을 감추는 법을 잘 안다. 그건 배우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상찬이다. 하지만 정말 희한한 점은 감춰진 그 모습 속에서 희끗희끗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낸단 점이다. 그건 아직은 설익은 그의 연기적 경험일 수도 있고, 반대로 그가 연기를 대하는 진중함의 무게가 스스로를 짓눌러 드러난 불안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에서 보여 진 변요한의 창대는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은 배우이자 인간 변요한 그리고 자산어보창대두 사람이 맞잡고 있었다. 관객들은 그 선을 오가며 변요한과 창대를 번갈아 바라보며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어야 한다. 도대체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저렇게 주고 받는 걸까. 그게 바로 자산어보속 변요한이 만들어 낸 창대창대를 연기한 변요한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지금도 흑산도에 거무튀튀한 얼굴로 바닷바람 맞으며 평생을 고기 잡이로 살아온 글 좀 읽는 한 청년이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았다.
 
배우 변요한.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자산어보는 흑백이다. 다른 이유를 다 떠나서 자산어보가 대중들에게 특별하게 전달되는 지점이 바로 흑백이란 점이 첫 번째가 될 것 같았다. 그 역시 특별했었단다. 하지만 영화를 촬영하면서부턴 색깔이 배우에게 큰 의미가 없어지는 경험도 했었단다. 그 안에서 자신이 숨쉬고 살아 있단 게 더 크게 와 닿았다고. 그래서 언론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글썽인 것도 있었단다.
 
감사하고, 여운이 너무 깊었어요. ‘흑백이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죠. 감독님 흑백 전작인 동주도 봤고. 배우로서 흑백에 대한 궁금증은 분명히 있었죠. 내가 그 안에 담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첫 촬영 이후 모니터링을 했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색채감이 없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놓치고 갈 만한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했죠. 그게 보이자 겁도 나면서 절대 연기로 거짓말 하지 말자란 마음 가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배우 변요한.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설경구가 연기한 정약전이란 인물도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위인이다. 그리고 변요한이 연기한 창대역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서문이 창대란 이름 두 글자로만 기록돼 있다. 배우적 상상력이 분명히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배우의 상상력이 어느 지점까지 허용돼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좀 막막했죠. 표현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분명히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게 뭘까 정말 많이 고민을 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창대가 지금 제 나이와 비슷하고 제가 하고 있는 고민과도 비슷한 걸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 시절의 젊은 창대는 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감독님도 뭔가를 하지 마라. 그냥 느끼는 대로 연기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더 힘을 얻었어요.”
 
배우 변요한.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역사에 기록돼 있지 않은 그저 이름 두 자만 있었다. 변요한이란 배우가 그렇게 만들어 낸 창대’, 그리고 또 역사에 분명히 존재했지만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정약전. 두 사람이 만들어 내고 이뤄나간 자산어보는 공교롭게도 큰 얘기는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주제와 의미는 그 어떤 것보다 무겁고 컸다. 그건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온전한 몫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자산어보의 무게는 그저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그 말씀에 저도 분명히 동의를 해요. ‘자산어보는 따지고 보면 정말 별다른 얘기는 아니에요. 큰 사건도 없고, 눈 여겨 봐야 할 얘기도 없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뭔가 다른 게 보이잖아요. 우리가 다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살면서 별 것 아닌걸 나중에 돌아보면 놓치고 말았던 걸 알게 되죠. 이준익 감독 영화는 특히 그런 것 같아요. 하나하나 따로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걸 알게 도는 얘기가 바로 자산어보가 아닐까 싶어요.”
 
배우 변요한.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런 평범한 연기가 변요한의 눈시울을 터트리게 만들 정도로 뜨겁게 다가온 이유는 이준익과 설경구란 두 대 선배 때문이었을 터. 두 사람은 변요한에게 언제라도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었던 선배였단다. 영화 감시자들에서 설경구를 한 번 만났었지만 당시에는 단역에 불과했던 변요한이다. 언제나 먼 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했던 대선배들이었다. 참고로 자산어보에 변요한을 이끈 것은 설경구의 추천이었다고.
 
“(설경구의 추천은)지금 생각해도 꿈 같죠. 언제나 동경했던 두 분을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됐으니 너무 흥분이 됐어요. 우선 경구 선배는 공과 사가 명확하세요. 후배들의 말을 하나하나 들어주시고 선택이 필요할 때 그 이상의 지혜를 전해 주세요. 그리고 마음 가짐도 대단하신 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에 줄넘기 1000개씩을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현장에는 대사를 전부 외워오세요. 대본 한 번 안보시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은 상대의 약점은 눈 감아 주세요. 진짜 왜 배우들이 함께 하고 싶은 감독 몇 손가락에 꼽히는 지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배우 변요한.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까마득한 후배인 자신을 이끌어 준 두 대선배의 큰 몫 때문일까. ‘자산어보창대는 역사에 이름 두 글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최소한 영화 자산어보창대는 분명히 조선시대 속에서 영화 속처럼 흑산도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그런 청년으로 완벽하게 존재하게 됐다. 이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창대는 변요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기억이 될 것이다.
 
“(웃음)너무 큰 과찬이시라. 제 고민이 그 시절 창대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어떤 마음으로 학문적 갈증을 느꼈을까 싶었죠. 그런 고민과 갈증을 안고 10대의 창대부터 20대 그리고 30대까지 세월의 흐름 속에 창대는 어떻게 변할까 궁금했죠. 결론적으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 처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창대를 잘 끌고 갔구나 싶어서 다행이에요.”
 
배우 변요한.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섬에서 촬영했고, 촬영 기간 동안 태풍까지 왔었단다. 고생도 고생이지만 도대체 이런 촬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했던 환경이었을 듯싶다. 하지만 변요한은 정반대였단다. 지금이라도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감정적으로 힘들고 지친 순간도 분명히 있었지만 돌아보면 자산어보작업 자체가 본인에겐 힐링의 순간이었고, 순간순간이 배움의 연속이었단다.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분들도 계시는 데 글쎄요. 전 너무 즐거웠던 기억 밖에 없어요. 몸은 당연히 힘들었죠(웃음) 하지만 그 공간에서 내가 꿈꾸던 대선배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단 게 황홀했어요. 모든 게 배움이었고, 모든 게 힐링이었어요. 알게 모르게 제가 한 2년 정도 휴식기를 가진 적이 있어요. 지쳤던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자산어보가 절 다시 뜨겁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작품이에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