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 확진자가 연일 1000명 안팎을 오르내리는 데다 변종까지 출현했다고 하니 조기종식 전망은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새해에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나라에서 백신이 접종된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보고는 싶다. 그렇지만 효과를 거두려면 아직도 갈길이 멀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경제상황이 여전히 암울하고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특히 크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계대출은 급증하고 있으니 몹시 걱정된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금융권 가계대출은 103조원 늘어났다. 은행권에서만 94조원 증가했다. 이같은 증가폭은 2019년 같은 기간중 늘어난 규모(48조4000억원)의 2배를 크게 웃돈다. 특히 11월 한 달 동안 은행에서만 무려 13조6000억원이나 새로운 대출이 일어나 사상최대 기록을 세웠다.
폭발적인 증가의 주된 이유는 집을 사기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대출이 크게 늘어난 데다 주식시장 활황세에 편승한 '빚투(빚내 투자)' 열풍까지 보태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통계자료를 보면 전세자금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10월 6조8000억원 증가한 데 이어 11월에도 6조2천억원 불어났다. 11월까지 집행된 주택담보대출은 62조원에 이르러 2017년 37조8000억원과 2018년 45조7000억원을 훨씬 웃돈다. 정부의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이 실패로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이제 정말로 새삼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가계부채가 전체 경제 규모를 넘어설 만큼 불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말 기준 명목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101.1%로 계산됐다. 전년동기에 비해 7.4%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처음 보는 일이다.
3분기말 현재 가계부채는 규모는 1682조100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7.0% 늘어난 반면 명목 GDP는 0.4% 늘어나는데 그친 결과다.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 1분기에도 97.9%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나라와의 격차도 더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코 자랑이라고 할 수 없는 1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명예 1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급증함에 따라 빚을 갚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위험도 아울러 커진다. 부동산투기가 진정되지 않고 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되면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도 저하될 것이 예상된다. 아직은 가계소득대비 상환능력을 의미하는 소득대비원리금상환비율(DSR)이 35.7%여서 크게 나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그런 총량지표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 상환능력이 의심스러운 한계차주가 관건이다. 현재 DSR 70% 초과 차주가 전체 부채의 40.1%를 차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10가구 가운데 4가구는 벌어들인 소득의 70% 이상을 원리금 갚는 데 쓴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가구의 비율이 더 늘어난다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는 곧 은행 등 금융사의 대출부실 급증으로 이어진다. 나아가서 은행의 국내외 신인도 역시 추락하게 된다.
게다가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소기업의 재무상황도 역시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의 대출은 지난해 11월까지 88조5000억원이나 증가했다. 대기업도 같은 기간 24조5천억원 증가했지만, 중소기업의 증가폭이 압도적으로 크다.
중소기업 대출은 2019년 한 해 동안 47조3000억원 증가에 그쳤는데 2020년에는 눈사태처럼 불어난 셈이다. 이 개인사업자 대출이 45조7000억원으로 절반 넘게 차지한다.
올해 일어난 코로나19 사태의 타격이 중소기업, 특히 자영업자들에게 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만약 가계대출에 이어 중소기업의 대출마저 상환하기 어려워진다면 말 그대로 설상가상의 상황이 빚어지게 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조기에 종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희망사항일 뿐,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따라서 더 중요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혹시라도 길어지더라도 버텨낼 수 있도록 대비를 잘해두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급증세를 억제하기 위해 은행들에게 대출관리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연말을앞두고 신용대출을 막는 등 갑자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소득이 낮은 계층의 일자리 등 안정된 소득기반 마련과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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