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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잔칫날’ 적나라한 장례 문화의 아이러니
웃긴데 웃을 수 없는, 답답한데 긴 여운 남기는 묘한 영화
2020-11-30 13:00:00 2020-11-30 13:00:00
[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죽음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평등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영화 잔칫날을 보면 이 말이 틀린 말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한국 장례 문화를 너무 적나라하게 담아내 오히려 이를 보고 있기 힘들게 까지 만드는, 그런 영화가 잔칫날이다.
 
무명 MC인 경만(하준 분)은 여동생 경미(소주연 분)와 함께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를 간호하며 살아간다. 병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경만은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돈을 위해서 달려간다. 무뚝뚝한 아들이지만 경만은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일을 마친 뒤 낚시를 가자고 제안을 한다. 일을 끝낸 뒤 경미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중 친한 형에게 지방의 한 잔칫날에 MC로 대신 가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는다. 장례 비용이 걱정인 경만은 동생에게 말을 하지 않은 채 잔칫날 행사로 향한다.
 
경만은 지방으로 팔순 잔치 행사를 가서 웃음을 잃은 자신의 노모를 웃게 해달라는 일식의 부탁을 받는다. 잔치를 준비하는 동네 사람들 역시 효자인 일식이 노모가 웃는 모습을 보면 돈을 더 챙겨 줄 테니 거듭 부탁을 한다. 하지만 경만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장례식장을 홀로 지키는 경미는 경만의 부재로 인해 답답한 상황에 처한다.
 
영화 잔칫날 하준, 소주연. 사진/트리플픽쳐스
 
 
잔칫날은 죽음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마지막인 장례 절차마저도 돈에 따라서 급이 나뉜다. 가족의 죽음 앞에 넋이 나간 이에게 장례식장 직원은 사무적으로 묻는다. 장례식장에 오는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을 어떤 것으로 할 거냐고 묻는다. 금액에 따라서 달라지는 음식의 질, 그리고 제단 장식을 어떤 걸로 할 건지, 수의를 뭘로 할지. 그러면서 장례식 비용이 적힌 서류를 무심하게 건넨다. 더구나 경만의 장례식장과 비교되는 줄지어진 조화, VIP, 3단으로 꾸며진 제단의 상갓집이 등장해 더욱 경만이 처한 현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들이 꽤나 현실적이다. 현실적이기에 경만이 처한 현실이 더 와닿을 수 밖에 없다. 아버지의 장례를 두고 행사를 선택한 경만의 심경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만드는 장치들이기도 하다.
 
텅 빈 장례식장에 온 조문객들의 모습 역시 서글픈 현실을 보여준다. 경만의 친구들은 부조를 얼마를 할지, 같이 계를 하지 않은 경만에게 조화를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을 한다. 경만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이 친구들은 각자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기 바쁘다. 더구나 경미에게 카드를 사오라고 시켜 도박을 한다. 빌려간 돈 때문에 사이가 틀어진 큰아버지는 자식을 보내 경만에게 빌려간 돈 이야기를 한다. 고모들은 남매를 도와주기 보다는 상황도 모른 채 간섭을 하며 자리를 비운 경만을 욕하기 바쁘다. 이러한 모습들은 고인이나 상주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나 예의 따위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단순히 이런 모습들이 마냥 허구가 아닌 실제 장례식장에서 종종 목격되기에 씁쓸함을 남긴다.
 
영화 잔칫날 하준, 소주연. 사진/트리플픽쳐스
 
 
온갖 상처를 받는 경만을 위로하는 사람은 팔순 잔치 때문에 만나게 된 일식이다. 일식은 장례비 마련을 위해 장례식장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병간호를 했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을 만들지 못한 후회를 내뱉는 경만을 위로한다. 위로를 받고 장례식장으로 돌아간 경만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순간 처음으로 눈물을 터트린다.
 
상갓집은 잔칫집 같아야 한다는 고모들의 말처럼 아이러니한 장례 문화를 보고 있노라면 씁쓸함이 가득한 그런 영화다. 아이러니한 일을 마주한 경만의 3일이 더해져 웃긴 상황임에도 마냥 웃을 수 없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경만이 경미와 함께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바다에서 아버지를 보내며 짓는 미소가 주는 긴 여운을 남기는 아이러니한 영화이기도 하다. 122일 개봉.
 

영화 잔칫날 하준, 소주연. 사진/트리플픽쳐스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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