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올해 11월 극장가는 유독 여성 영화들이 많다. 국내 영화 ‘내가 죽던 날’, 재개봉 영화 ‘프랑스여자’ 그리고 외화인 ‘마리 퀴리’와 ‘안티고네’ 등이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서사로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이들 영화는 여성의 서사를 그리면서 여성 배우와 함께 여성이 감독으로 나서 공감과 소통에서도 주목되는 작품들이다.
최근 극장가 최고 화제작으로 주목되는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다. 지난 12일 개봉한 ‘내가 죽던 날’은 김혜수부터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문정희 등 다양한 개성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무장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쟁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지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각자 삶의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연대를 세밀하게 담아내 호평 받고 있다.
이어 18일 개봉한 ‘마리 퀴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든 천재 과학자 ‘마리 퀴리’의 빛나는 도전과 숨겨진 얘기를 그린 실화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이 남성 중심 과학계에서 여성이란 이유로 연구실에서 쫓겨나고, 노벨상 수상이 불발될 뻔한 얘기 등 위대한 발견과 성취는 물론 삶과 사랑에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마리 퀴리’의 모든 것을 새롭게 조명해 기대를 모은다. 또한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등 굵직한 영화제를 휩쓴 로자먼드 파이크가 ‘마리 퀴리’ 역을 맡아 높은 싱크로율로 실존 인물의 일평생을 소화해 남다른 역량을 또 한 번 입증한다.
19일 개봉하는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안티고네가 오빠 대신 감옥에 들어가면서 SNS 영웅이 되는 얘기를 담았다. 고대 그리스 희곡 ‘안티고네’를 각색해 2500년 전 얘기를 현대의 난민 가족 얘기로 재탄생시킨 소피 데라스페 감독이 연출부터 각색과 촬영까지 모두 직접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신예 나에마리치 역시 21세기 안티고네를 완벽하게 재현해 토론토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지난 16일 재개봉한 ‘프랑스여자’는 배우를 꿈꾸며 프랑스 파리로 떠난 ‘미라’가 20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 옛 친구들과 재회한 후 시공간을 넘나드는 특별한 여행을 하는 얘기다. 전주국제영화제, 샌디에고 아시안영화제, 폴란드 Cinergia 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광주국제여성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벡델초이스10’과 ‘영평 10선’에서 10대 한국영화로 손꼽히며 2020년 가장 주목해야 할 여성 영화임을 입증한 바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디스테이션이 함께하는 ‘코로나19 극복, 재개봉 한국영화’로 선정되며 또 한 번 이목을 집중시켰다.
‘열세살, 수아’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설행_눈길을 걷다’까지 매 작품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아온 김희정 감독이 이번 ‘프랑스여자’에서 파리와 서울, 과거와 현재, 시공간을 넘나드는 40대 여성 ‘미라’의 특별한 여정을 담았다. 연기 인생 30년 차 김호정이 프랑스 국적 한국 여성 ‘미라’로 분해 경계인의 삶에 대한 불안과 혼란의 감정을 밀도 높은 연기로 표현해내며 존재감을 발산했다.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솔직하고 유쾌한 매력의 영화감독 ‘은영’ 역의 김지영과 ‘미라’와 함께 배우의 꿈을 키웠던 후배 ‘해란’ 역을 맡은 류아벨 등 베테랑 배우들과 신예 배우들의 앙상블도 조화를 이룬다.
11월의 여성 서사, 그리고 11월의 작지만 강한 영화들의 중심에 강한 여성들이 우뚝 서 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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