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아침에 자고 일어난 에이든(타일러 포시 분)은 TV에서 긴급 재난 방송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발발한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한 세상에서 집 안에 홀로 갇히고 만다. 전화도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없는 에이든은 지켜간다. 노트북을 통해 매일 같이 영상을 남기는 에이든은 급기야 희망을 잃고 죽음을 결심하는 순간 건너편 아파트에 있는 또 다른 생존자 에바(섬머 스피로 분)를 발견한다. 삶의 희망을 발견한 에이든은 에바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동일한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연출에 따라 작품의 색이 달라진다. 조니 마틴 감독이 연출한 ‘얼론’은 지난 6월 국내에서 개봉한 유아인과 박신혜가 주연을 맡은 조일형 감독의 ‘#살아있다’와 동일한 시나리오로 제작된 영화다. 맷 네일러가 쓴 각본을 ‘얼론’과 ‘#살아있다’는 리메이크 관계가 아니다. 각각 연출을 두 감독이 각본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다는 점이 흥미롭다.
‘얼론과’ ‘#살아있다’는 도시를 초토화 시킨 원인불명 바이러스를 피해 혼자 집안에 고립된 남자가 겪는 극심한 외로움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등장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살아있다’는 한국의 특성에 맞게 고립된 상황에서도 오준우(유아인 분)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거나 음악을 듣는 등의 행위를 한다. 또한 드론을 띄워서 주변을 탐색하기도 한다. 준우가 후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캐릭터적 특징이다. 즉 이러한 모습들이 준우라는 인물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떤 성향인지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반면 ‘얼론’은 주인공 에이든의 설명이 부족한 느낌을 준다. 평소 서핑을 즐기는 에이든은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 외에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를 유추할 만한 아무런 단서가 주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차이점은 국가적 특색이 들어나는 ‘#살아있다’와 국가를 특정하기 어려운 ‘얼론’이다. ‘#살아있다’는 경찰, 경비원, 그리고 군대 등의 국가적인 특색이 묻어 있다. 더구나 준우와 비슷한 또래가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나 블루투스 이어폰 사용자 급증으로 인한 줄로 된 이어폰을 찾기 힘든 사회적 상황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얼론’은 국가적인 특징을 유추할 만한 배경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얼론’은 에이든이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한다. 사회적 혼란으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인물이 절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서 두 영화 속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의 차이점이 생긴다. ‘#살아있다’에서 준우는 생존에 있어서 조금 모자란 면모를 보인다. 유빈(박신혜 분)이 생존한 사실을 알고 다시 삶의 의혹을 불태운다. 그런 준우에게 생존 지식을 알려주는 인물이 유빈이다. 반면 ‘얼론’에서 에이든과 에바의 관계는 ‘#살아있다’와는 다르다. 유빈이 캠핑 전문가로 각종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에바는 평범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에 에바는 유빈과 달리 에이든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남녀의 관계성 역시도 차이가 있다. ‘#살아있다’에서 두 남녀는 생존을 위한 파트너 관계에 가깝다. 하지만 ‘얼론’은 위기 속에 살아 남은 남녀의 로맨스가 피어 오른다.
영화 '얼론'. 사진/안다미로
‘얼론’의 또 다른 재미는 감염자의 모습이다. ‘#살아있다’ 역시 기존의 좀비물과 다른 방식을 취한다. 생전에 했던 행동을 기억하고 있는 좀비들의 모습으로 인해 위기가 찾아온다. ‘얼론’은 강한 폭력성을 드러내며 식인 행위를 하는 좀비에게 낮은 수준의 지적 능력까지 부여했다. 특히 화장실 환기구를 타고 집에 침입을 하거나 단순한 문장을 반복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이러한 시나리오의 특성을 위해 소방관, 경찰, 경비원 등의 특정 직업군을 등장시키는 반면 ‘얼론’은 각각의 인물의 죽기 전 취했던 행동과 말을 통해 괴기스러움과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한다.
‘얼론’은 ‘#살아있다’의 조금 다른 결말을 취하는 점도 흥미롭다. ‘#살아있다’가 한국영화적인 결말을 선택했다면 ‘얼론’은 좀비 장르물의 전형적인 결말을 택했다. 이처럼 같은 각본에서 출발한 만큼 ‘얼론’은 국내에서 개봉해 190만 관객을 동원한 ‘#살아있다’와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좀비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혹은 ‘#살아있다’를 이미 봐서 두 작품의 비교를 원한다면 ‘얼론’을 보는 것을 권한다. 주요 사건들이 비슷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충분히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국가적 특성을 반영한 참신성, 한 인물이 고립됐을 때 보여주는 외로움의 깊이 등은 ‘얼론’보다는 ‘#살아있다’가 더 흥미롭게 해석했다. 좀비가 말을 하는 부분의 괴기스러움을 제외하면 ‘얼론’에 등장하는 좀비의 움직임, 분장 역시 ‘#살아있다’보다 긴장감이 덜하다. 18일 개봉.
영화 '얼론'. 사진/안다미로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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