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웃사촌’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배우의 복귀작이란 타이틀로 주목하게 만든다. 사실 ‘복귀작’은 아니다. 이미 촬영을 끝냈지만 뜻하지 않게 ‘미투 사건’이 터지면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다. 그리고 이 배우에 대한 혐의가 ‘내사 종결’로 마무리되자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공개된 영화는 이 배우의 몫이라기 보단 사실 그의 상대역인 배우 정우가 더 빛을 봐야 하는 얘기다. 그리고 정우가 끌고 가는 얘기다. 그래서 한쪽은 ‘나쁘고’ 또 한 쪽은 ‘좋다’의 개념이란 얘기가 아니다. 의외로 평범한 이분법적인 얘기다. 반대로 지극히 평범한 영화도 아니다. ‘1000만 요정’이란 타이틀을 보유했던 오달수의 얼굴에서 진중함과 무게감을 느껴야 한다. 연출을 맡은 이환경 감독은 전작 ‘7번방의 선물’을 통해 세상을 웃기고 울렸다. 어떤 사람은 ‘7번방의 선물’ 흥행에 불편해 했고, 또 어떤 사람은 평가절하했으며 극소수는 그 영화를 격멸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감독은 ‘이웃사촌’을 통해 갈고 갈은 칼을 선보이고 싶었던 듯싶다. 전작의 흥행이 ‘우연이 아닌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생경한 오달수의 얼굴에서 자신의 특기 중 하나인 아이러니를 뽑아내려 애썼다. 결과는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정우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전체도 마찬가지다.
‘이웃사촌’은 상대방으로 인해 내가 변화되는 얘기다. 유력한 대선 후보 정치인 이의식(오달수)은 두 가지를 담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맞다. 이 영화는 고 김 전 대통령의 얘기가 모티브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오달수다. 영화의 첫 대사는 해외에서 오래 머물던 이의식이 오랜만에 귀국하면서 시작한다. ‘정말 오랜만이다’란 그의 대사.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달수의 복귀와 맞닿아 있다. 그 역시 오랜만이다. 감독의 편집 의도일 수도 있지만, 묘한 감정이 중첩된다.
1985년이 배경이다. 그 시절은 ‘빨갱이’란 단어가 지배하던 세상이다. 이 단어 하나에 민심이 요동치고, 권력을 잡고 있던 세력은 더욱 더 그것을 공고히 하던 그 시절이다. 이의식의 귀국은 정국을 뒤흔들 일대 사건이다. 그의 대선 출마 의지를 꺾기 위해 정보기관은 약점을 잡아야 한다. 일단, 갖은 이유와 핑계를 만들어서 그를 가택 연금시킨다. 그리고 그의 옆집에 정보기관 요원들이 배치된다. 그들은 이의식의 집을 도청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빨갱이’란 단어에 애국심을 폭발시키던 유대권(정우)은 대학생 데모 수뇌부 검거 공을 높이 사 ‘이의식 도청팀’ 팀장으로 새로 부임한다.
영화 '이웃사촌'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유대권에게 이의식은 ‘빨갱이’다. 사실 ‘빨갱이’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이라고 단정하고 모든 것을 출발하는 것이다. 유대권은 좋은 세상을 만들고, 좋은 세상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꿈꾸는 그저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그거 직업이 그럴 뿐이다.
대권의 눈에 의식은 이상할 정도로 평범하다. 그게 그래서 더 이상하다. 필사적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빨갱이’ 증거를 찾아야 한다. 평소 의식이 즐겨 듣던 나미의 ‘빙글빙글’을 두고 팀원들과 ‘북한으로 보내는 암호’라고 주고 받는 대화는 아이러니가 아니라 코미디다. 지금의 시선에서 그 시절은 그랬다. 모든 게 코미디였다. 그리고 또 그런 게 사실이기도 했다.
영화 '이웃사촌'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시간이 지나도 의식의 ‘빨갱이’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안되겠다. ‘비밀 도청’ 작전을 ‘공개 도청’ 작전으로 전환한다. 대권은 의식의 일상으로 뛰어든다. 의식과 모든 것을 공유한다. 보다 더 밀착 접근을 하면 숨어있던 실마리는 드러날 법했다. 이제 나라를 구할 수 있게 됐다. ‘각하’의 이름이 새겨진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면서 애국심을 다시 불태운다. ‘난 애국자다’라고. 사실 그때부터 대권은 조금씩 흔들렸는지도 모른다. 왜 흔들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이 뭔가 잘못되고 있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면 대권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권은 거부할수록 의식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대권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고 있단 걸 알게 된 것이다.
의식은 지극히 평범했다. 아들과 목욕탕을 한 번 가는 게 ‘지금 바라는 최고’인 아빠의 모습, 딸과의 소소한 대화와 일상이 소중한 아빠의 모습. 가족과 함께 저녁 자리에 모여 오순도순 얘기 꽃을 피우는 아빠의 모습. 그게 부러웠다. 아니 잊고 지내던 자신의 모습이 의식의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대권에겐 ‘그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대권은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그것’이 사실은 ‘빨갱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또 믿으며 경멸하고 경멸하던 의식의 모습에서 그걸 본 것이다. 동료의 죽음에, 그리고 무조건 적인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의식을 위해 대권은 이제 스스로가 바른 길이 무언지 알게 된다.
영화 '이웃사촌'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이웃사촌’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하지만 반대로 충분히 감동적이라고 애를 쓰고 있다. 그건 시간의 문제다. ‘그 사건’이 없이 제대로 우리에게 왔다면 ‘감동’은 충분했고, 그 ‘충분’은 뜨거웠을지 모른다. 지금의 세상은 이 영화가 말하는 다름을 말하는 세상은 아니다. 지극히 ‘지나간 얘기’로 다가오는 건 이 영화의 의도적 ‘목적’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만들어 낸 ‘숙명’이란 점이 더 타당해 보인다.
정우의 연기는 그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인간미와 감정의 굴곡에서 사실 그 이상의 발전을 보여줬다고 말하긴 힘들다. 정우의 눈물과 정우의 인간미, 정우의 웃음과 정우의 아이러니는 특유의 색깔을 갖고 있다. 그 색깔을 작품의 색깔에 덧칠하고 색감을 조절하는 건 배우의 몫이라기 보단 연출자의 조율이다. 오달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연기력이 문제는 아니다. 배우는 각자의 색깔이 강한 ‘도구’다. 어떤 ‘도구’는 날카로움이 항상 유지돼 있고, 어떤 ‘도구’는 무뎌지고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지만 재질의 강건함을 유지한다. 오달수란 ‘도구’는 ‘전장의 피를 갈망하는 날이 시퍼런 장검’이 아니다. 들판의 풀을 베고 부엌의 어머니가 쥐고 도마 위에서 춤을 추는 ‘식칼’에 가깝다. 그건 일상성이 강한, 우리의 정서와 보다 더 가까운 친근함이다. ‘이웃사촌’에서의 오달수는 전장의 장검 흉내를 낸다. 식칼을 들고 전투에 나선 장군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영화 '이웃사촌'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이환경 감독은 7년 전 ‘7번방의 선물’을 통해 아이러니한 두 공간의 대비를 통해 감정의 파동을 끌어 낸 바 있다. 이번에도 세상이란 대전제 속에서 집안과 집 밖의 두 공간 대비를 통한 인물의 감정적 흡수 과정을 그려낸다. 전작이 관객들의 감정을 쥐고 흔들었다면, 이번 영화는 오롯이 배우들의 감정만 쥐고 흔들어 버렸다.
전작의 깜짝 흥행에 큰 부담을 느낀 것 일까. 아니면 과도한 의욕의 산물일까. 좋은 재료와 좋은 방식을 갖춘 결과물이지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결과물이 됐다. 앞서 언급했지만 ‘시간이 만들어 낸 숙명’이 이유라면 ‘이웃사촌’의 운명은 너무 얄궂다. 개봉은 오는 25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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