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차기태의 경제편편)대기업들은 교만하지 아니한가
2020-11-04 06:00:00 2020-11-04 06:00:00
현대차와 기아차는 이번 3분기 실적에 2조1000억원과 1조2600억원의 품질 비용을 각각 충당금으로 넣어둘 것이라고 공시했다. 지난 2018년 3분기(4600억원)와 2019년 3분기(9200억원)에 이어 또다시 엔진 리콜 관련 충당금을 쌓은 것이다. 금액도 작년보다 크게 늘었다.
 
2015년부터 미국에서 그랜저와 소나타, K5 등 주력 차종에 적용된 세타2 엔진 결함으로 수백만대를 리콜하고 평생 보증함에 따른 것이다. 그 결과 현대차는 3분기에 3138억원의 영업수지 적자를 냈다. 기아차의 경우 195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간신히 적자를 모면했다. 품질관리를 잘못한 대가가 이토록 크다.
 
내연기관 자동차뿐 아니라 전기차에서도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다. 지난달 17일 새벽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주민자치센터 주차장에서 코나 EV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급속 충전 중이던 차량에서 폭발음과 함께 차량 뒷바퀴 쪽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지난달 4일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전기차 1대가 불타버린 지 13일 만에 다시 일어난 사고다.
 
현대차가 지난달 16일부터 국내외에서 7만7000대의 코나에 대한 리콜을 시작한 그 다음날 사고가 터진 것이다. 게다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정식으로 총수에 오른 지 불과 3일 만에 터졌다. 더욱이 일부 보도에 따르면 리콜받은 차량이 갑자기 운행불능 상태에 빠져 이른바 '벽돌차'가 되기도 했다.
 
현대차의 전기차 화재사고는 올 들어서만 벌써 7차례 일어났다. 지난 2018년 출시된 이후 일어난 사고가 벌서 14차례를 헤아린다. 현대차가 정몽구 회장 시절부터 '품질경영'을 강조했다지만, 전기차의 잇따른 사고를 보면 미덥지 않다.
 
잇따라 일어난 사고의 정확한 원인조차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그저 배터리불량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결과만 나왔을 뿐이다. 그나마 배터리를 제작한 LG화학은 이같은 진단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이번 리콜을 통해 문제를 확실히 찾고 해결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잘못하다가는 한국산 전기차와 국산 전기차 배터리 성장세에 한꺼번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일부 증권사에서는 한국산 전기차와 배터리 판매목표를 낮췄다.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가 지난 16일 출시한 '갤럭시S20 FE(팬 에디션)'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벌써 터치불량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아이폰12를 겨냥해 사전예약으로 내놓은 제품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소비자 불만은 지난달 초 먼저 출시된 미국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신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했다. 그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사실 한국 대기업의 제품이 품질문제를 일으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삼성전자는 '갤럭시 폴드' 스마트폰 제품에서 하자가 드러났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품질경영의 정신이 지금도 살아 있는지 묻고 싶다.
 
LG전자 의류건조기는 자동세척 기능 불량 등으로 환급요구를 받기도 했다. 이를 심의한 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LG전자가 위자료 10만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한국 사회를 오래도록 시끄럽게 만들었던 가습기 살균제도 SK와 애경 등 대기업 제품이다. 지난해에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계속 일어나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더욱이 ESS의 경우 원인조사가 명쾌하게 이뤄지지도 않았다. 1차 조사 후에도 명쾌하게 매듭지어지지 않고 2차조사까지 벌여야 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산 ESS의 품질신뢰도는 큰 상처를 입었다.
 
품질불량으로 인한 후유증은 오래 이어지고 피해자에게 큰 아픔을 남긴다. 수천명에 이르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아직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에도 치명적 타격을 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고객신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시장은 그야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경쟁과 투쟁의 무대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나기 위한 확실한 무기는 품질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대기업의 많은 제품이 국내외에서 높은 품질과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상당히 우쭐해진 모양이다. 이제까지 이룬 성과가 사소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교만해져서는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
 
모든 명성과 이미지도 덧없는 것이다. 한때 빛나다가도 어느 순간 빛을 잃을 수도 있다. 기업의 제품과 브랜드가치도 창졸 간에 추락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천사 루치펠이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처럼.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