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도굴’은 한 마디로 ‘스탠다드’(standard)하다. 장르 색깔과 기준에 딱 들어 맞게 시작하고 흘러가고 결말을 맺는다. 때문에 이 영화가 담고 있고, 추구했던 재미와 흥미는 관객들에게 ‘딱 예상 가능한’ 정도로만 다가온다. 이게 단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장르적 재미와 흥미란 측면을 좀 더 넓게 보고 접근한 것은 아닌가 싶다. ‘코로나19’로 2020년을 통째로 날려 보낼지 모를 국내 영화계에 오랜만에 등장한 상업 오락 영화를 두고 ‘현미경 분석’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완벽한 팝콘 무비’에 가깝다. 그래서 예상 가능한 재미와 흥미 정도를 전달한다. 그런데 이 얘기가 ‘만약 시리즈의 오프닝 스토리라면’이란 가정으로 출발하면 예상 가능한 재미와 흥미는 분명히 확장된다. 2편과 3편 그리고 그 이후까지의 얘기를 예측한다면 영화 속 캐릭터와 설정 그리고 인물간의 관계성 등이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도굴’이 아마 거기까지 유념하고 출발했다면 쉽게 볼만한 영화는 아니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영화 마지막 2편을 예고하는 듯한 엔딩 시퀀스가 그래서 주목되는 ‘도굴’이다.
‘도굴’ 제목 그대로 ‘도굴’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형식적으론 ‘케이퍼무비’를 따른다. 캐스팅은 ‘멀티’다. 전형적인 ‘케이퍼무비’의 촘촘함보단 인물간의 상황적 코미디가 더 적합한 흐름이다. 흙 맛만 봐도 땅 속 보물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있는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는 전국의 도굴 전문가들을 끌어 모아 전설의 보물을 ‘도굴’을 계획을 세운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오프닝부터 흥미롭고 코미디적인 요소가 강하다. 황영사 9층 석탑 내부에 안치된 금동불상을 훔쳐 내는 방식이 기상천외하다. 스님으로 변장해 절에 잠입한 강동구는 능청스럽다. 그리고 대범하다. 훔쳐 낸 고려시대 금동 불상을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아 아무렇지 않게 휘둘러기며 고미술품 거리를 활보한다. 불상 판매를 위한 시도일 지 모르지만, 사실 강동구의 속내는 따로 있다. 이건 일종의 미끼다.
영화 '도굴'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강동구의 금동불상 도굴은 국내 고미술계 큰 손인 회장(송영창)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회장의 오른팔이자 고미술계 유명 큐레이터 윤 실장(신혜선)은 동구와 접촉한다. 불상을 회장 측에 넘기는 조건으로 관계 맺기에 성공한 동구는 윤 실장과 회장으로부터 더 큰 그림에 대한 제안을 받는다. 중국에 위치한 고구려 시대 고분 벽화 도굴 의뢰를 받는다. 일반적인 문화재 도굴과 달리 고분 벽화 도굴은 좀 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동구는 고분 벽화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와 함께 중국에서 우여곡절 끝에 고구려 고분 벽화를 도굴해 한국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 그림이 그려진 뒤 동구는 회장에게 진짜 속내를 내비친다. 서울 강남 선릉 내부 부장품인 전설 속 보물 도굴에 대한 계획을 전한다. 천하의 고미술계 큰손 회장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다. 고미술 전문가 윤 실장도 동구의 계획에 호기심을 느낀다. 동구는 또 한 명의 전문가인 굴 파기 달인 삽다리(임원희)를 섭외한다. 이제 명실상부한 ‘도굴 어벤져스’가 만들어 졌다.
영화 '도굴'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굴’은 케이퍼 무비다. ‘무언가를 훔쳐 내기 위해 여러 인물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는’ 얘기다. 하지만 이 과정이 전통적인 케이퍼무비 형식에선 아주 조금 벗어난다. ‘도굴’ 자체가 완벽한 오락영화를 지향하기 때문일 듯싶다. 기본적으로 코미디 정서가 짙다. 오프닝 시퀀스인 ‘황영사 9층석탑 도굴 사건’부터 ‘강동구’란 인물의 작명과 명함 장치의 센스, 인물의 성격 등이 케이퍼무비의 경쾌함보단 코미디의 발랄함과 유쾌함에 더 가까운 분위기다.
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일까. 오프닝 사건부터 마지막 클라이맥스 사건인 ‘선릉 도굴’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좀 흐릿하다. 이런 점은 강동구를 중심으로 사건의 관계보단 스토리를 끌어가는 ‘리드 캐릭터’를 위한 과감한 ‘선택과 집중’으로 보면 될 듯싶다. 전체의 판을 까는 ‘강동구’의 기상천외한 속내와 계획은 사실 모든 인물을 장기판의 말로 보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영화 '도굴'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회장과 윤 실장 관계 그리고 두 사람에게 접근하는 강동구의 속내, 여기에 선릉을 도굴 타깃으로 삼은 이유.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도굴 스킬’과 ‘과정’. 결정적으로 관객의 눈을 완벽하게 속이는 인물의 장치적 설정까지. 불규칙하게 흩어진 여러 설정과 관계가 마지막 클라이맥스 지점에서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 영화의 시작부터 결말까지의 흐름이 정리가 된다.
‘도굴’은 특별한 주제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완벽한 오락 영화이고, 팝콘 무비다. 흐름과 구성 그리고 설정에서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고, 또 무리수가 보이는 지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게 이 영화의 단점이라고 하기엔 ‘도굴’의 정체성이 너무 명확하기에 장점이 그걸 충분히 덮어 버릴 수 있을 듯하다.
영화 '도굴'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영화 마지막 속편을 암시하는 장면, 그리고 인물의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까지 드러내면서 ‘도굴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흥미롭게 느껴질 풍미까지 남겨뒀다.
이 영화가 거대한 이야기의 오프닝 스토리라면,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한 선택이다. ‘오락영화’란 정체성에서 ‘도굴’은 ‘완성형’으로 가는 시작의 가장 적절한 ‘스탠다드’이다. 개봉은 11월 4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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