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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립과학관과 유교랜드
2020-10-30 06:00:00 2020-10-30 06:00:00
얼마전 과방위 국감장에서 국립중앙과학관의 자연사 표본 80만점 중 민물고기만 43만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별한 연구목적이 아니면, 한국을 대표하는 중앙과학관의 표본 대부분이 민물고기일 이유는 없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유국희 중앙과학관장의 전공은 원자핵공학으로, 그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과학기술정통부 대변인을 거쳐 국립중앙과학관장에 임명되었다. 지난 11년간 중앙과학관장은 모조리 과기부처 관료 출신이 독점해 왔다. 중앙과학관장은 과기부처 관료의 휴양지다.
 
과학관이 민간 주도인 서구와 달리 국공립 과학관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과학관장은 낙하산 인사의 향연장이다. 2018년엔 국립부산과학관장과 국립광주과학관장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WISET 출신 인사들이 비전문·코드 인사로 임명되며, WISET 출신인 당시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과의 연관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심지어 광주과학관장에 임명된 김선아씨는, 과학관 운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수학과 교수 출신이었다. 과학관의 경영을 책임져야 할 관장이 정치인의 코드 인사로 임명되고, 주어진 임기마저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학관이 제대로 운영될 리 없다. 
 
며칠전 국립과천과학관이 할로윈에 맞춰 ‘할로윈 사이언스’를 연다며 페이스북에 유료 이벤트 광고를 했다. 포스터는 요즘 유행하는 B급 감성인데, 최근 방송에서 크게 히트친 나훈아의 노래 테스형을 중앙에 배치했다. 행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포스터엔 재미도 맥락도 없다. 코로나19 시대, 감염병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대응보다 할로윈 파티가 과학관의 주요 행사가 된다는건 이해를 넘어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촌극이다. 가장 화가 나는 건,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과학관이 과학대중화를 빌미로, 갈 수록 과학을 저질화시키는 참극이다. 국립 예술의 전당 행사포스터가 이 모양 이 꼴이었으면, 아마 예술인 대부분에게 욕을 먹었을 일이다. 심지어 과학기술계와 과학관 사이엔 아무 접점도 없다. 과학이라는 말을 빼면, 한국의 과학관과 과학자 사이엔 아무 관계도 없다. 과학관을 바라보는 과학기술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현행 과학관 육성법에 따르면 과학관은 “과학기술자료를 수집·조사·연구하여 이를 보존·전시하며, 각종 과학기술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여 과학기술지식을 보급하는 시설”을 말한다. 서양에서 기원한 과학관은 1세대인 과학박물관, 즉 수집·보관·연구·전시를 주요기능으로 하던 시대를 거쳐, 2세대인 과학센터, 즉 전시를 넘어 소규모 실험을 통해 과학기술의 원리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비정규 과학교육 공간으로 진화했다. 최근엔 제3세대 과학관, 즉 과학기술과 사회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광장으로서의 과학관’ 논의가 활발한데, 한국의 과학관은 관료주의의 함정에 빠져 무의미한 표본 유지와 유치한 과학대중화 행사에 치중하고 있다.
 
과학관은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장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과학관의 연구 기능이 대폭 증진되어야 하며, 과학관의 운영이 정치적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중앙과학관에서 자연사 표본을 관리하는 연구인력은 단 2명 뿐이다. 과학관 운영에 아무런 철학과 비전을 갖지 않은 과학관장을 십수년간 임명한 참혹한 결과다. 이번 민물고기 표본 사태는, 표본의 대다수가 민물고기였기 때문이 아니라, 1억점이 넘는 선진국의 표본 수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의 표본을 보유한 중앙과학관의 수준과, 그 표본을 관리하는 인력과 체계가 전무하다는 어이없는 현실 때문에 비참한 것이다.
 
과학관의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관료주의와 엉터리 과학대중화로 과학관의 역할을 축소?왜곡한다면, 과학관은 얼마 안가 사회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 전직 과학관료는 동네마다 과학관을 지어 과학자 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2007년 과기부가 작성한 ‘과학관 육성을 위한 기본 정책방향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써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과학관이 적으면 국민과 국가가 지원하여 많은 과학관이 건설될 수 있지만, 미흡한 과학관이 많으면 외면당하고 드디어는 폐쇄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얼마전 경상북도가 400억원을 들여 만든 유교랜드가 고질적인 적자로 혈세를 축낸다는 기사가 화제였다. 수백억을 들여 건설 중인 국립과학관이 유교랜드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제발 과학이라는 이름을 욕보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도대체 테스형은 과학과 무슨 관계일까?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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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유교는 교과서를 통해 학술적으로 파악하는게 옳음.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blog.daum.net/macmaca/2888

2020-10-30 08:15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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