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뉴스통 뉴스 카페

농협은 농업인 도와주지 못할망정 방해 말아야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훈장은 "나무에 올라가라"고 말씀하시고, 악동은 밑에서 나무를 잡아 흔들면 나무 위에 올라간 학동이 어떻게 될까? 정치권과 중앙정부는 연일 개혁을 주창하는데 일선 금융기관은 계속 악동 노릇에 여념이 없다면 국정이 어떻게 될까? 농협은 작금 춘향전에 나오는 "(잔치의)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양반들의) 노래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망소리도 높구나"(촉루락시민루락 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원성고 歌聲高處怨聲高)라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시중의 여느 금융기관이 아니라 농업인 기반의 농협이 악동 역할을 맡아 원성을 듣는다.  코로나19 사태로 중소상공인이나 영농·영어 조합 등의 자금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곳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대출 연좌제가 원성을 야기한다. 경북 상주 소식통에 따르면, 어느 포도영농조합법인은 한국 최초로 식품연구원으로부터 발사믹 식초 제조기술을 지원받아 연구개발에 착수하였다. 발사믹 식초는 현재 국내 기술로 개발되지 아니하여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대기업도 아닌 영농조합이 첨단 기술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희귀하고 장한 일이다. 포도 농가가 발사믹 식초 개발에 나섬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어촌 활성화 차원에서 장려하는 융복합(6차)산업 정책과 부합한다. 영농조합이 국내 초유의 제품을 개발하려니, 비록 기술을 넘겨받았지만, 생산공정 설계에서부터 기계제작 그리고 제조와 유통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자금이 들고 장애의 연속이다. 어렵사리 경상북도와 상주시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수년간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는가 싶었지만 20% 상당 4000만원의 자부담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영농조합은 결국 조합 대표자의 부동산을 담보로 서상주농협에 대출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부동산에 700만원 상당의 근저당 채무가 남아 있어 이를 갚지 않으면 근저당 해지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이를 완제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가 남았다. 이 부동산에 연동된 다른 3800만원의 대출이 발목을 잡았다. 영농조합은 달리 융통하여 이것을 갚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련이 기다렸다. 농협은 "영농조합 대표자가 농협으로부터 신용으로 대출받은 4000만원의 채무까지 마저 갚아야 근저당을 해지해 주겠다"는 이른바 '대출 연좌제'를 꺼냈다. 그렇다면 4000만원의 담보대출을 받기 위하여 모두 8500만원의 채무를 갚아야 된다는 셈법이다. 4000만원이 필요해 대출을 받겠다는 영농조합이 8500만원을 동원해야 한다면 대출을 받을 실익이 있겠는가? 도대체 이런 셈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담보물에 걸려 있는 잔존 채무나 다른 연대보증을 상환하라는 요구는 당연하겠으나 계열과 근거가 완전히 다른 "신용대출까지 상환해야 담보물에 설정된 근저당을 해지해 주겠다"는 규제는 대한민국 어느 법령에도 또 어느 금융거래약관에도 없다. 이는 부당한 관행이 아니라 횡포이다. 국무총리실 민관합동규제개선기획단은 지금도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단위농협들을 거느린 굴지의 농협중앙회가 일선 조직들을 관리하지 못하여 새마을금고나 신용협동조합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금융 관행을 되풀이한다면 전국 차원의 금융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런 사태는 근본이 왜곡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농협은 농업인들을 위하여 농업인들에 의하여 설립된 자조조직(공동체)임에도 어느덧 협동조합 본연의 자세로부터 멀어져 농업인들의 현황을 살피고 협력하는 공동체 기구가 아니라 유통과 금융기관으로 변모하였다.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와 사회적 경제주체들의 약진은 우연이 아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중소 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에 법인격을 부여하고 활동을 장려함은 농협 등 한국의 전통적인 거대 협동조합들이 본연의 정신에서 벗어나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기관으로서의 농협이 시중은행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관행을 되풀이하는 대출 연좌제는 비리는 아니더라도 적폐이다. 농협이 기술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영농조합법인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원칙에 벗어나는 대출 연좌제를 태연히 반복함은 밑둥에서 나무를 흔드는 행동과 다를 바 없다. 농협에 개혁이 필요한 부문이 비단 금융뿐일까? 공동체는 경쟁이 아닌 상부상조를 정신으로 삼는다. 융복합(6차) 산업 활성화에 애쓰는 농업인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뱁새는 붕새의 뜻이 궁금하다1983년, 지금은 몰락한 '코미디 왕국 MBC'의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중에 <일요일 밤의 뉴스 대행진>이 있었다. 개그맨 김병조(현 조선대 특임교수)씨가 진행하는 시사풍자 코미디였다. 사이사이 콩트도 끼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콩트 대사 중 "뱁새가 어찌 봉황(붕새)의 뜻을 알겠느뇨~"라는 유행어가 꽤 인기였다.  학구소붕. '조그만 비둘기가 큰 붕새를 비웃는다'는 뜻이다. 소인이 위인의 생각을 이해 못하고 도리어 비웃음을 이르는 4자 성어다. 필자 역시 코흘리개 시절이었는지라, 정확한 대사가 뱁새였는지 참새였는지, 아니면 원래 뜻대로 조그만 비둘기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 중수부장이나 서울중앙지검 차장이 기자들과 만나는 소위 '티타임'은 붕새가 뱁새들과 만나 진을 빼는 '선문답'과 '스무고개'의 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검찰이 공보체계를 통해 전파하는 '풀 문자'는 물론 중간 브리핑도 없었는지라 뱁새들은 붕새 입만 바라봤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수사진행 상황이나 주요 피의자 소환 시기는 뱁새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거물급들이야 어찌어찌 소문이 난다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참고인으로 들어왔다가 갑자기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돼 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궁지에 몰린 하수인격 피의자나 중간 관리자들 중에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적어도 '티타임'에서 붕새가 먼저 입을 여는 예는 없었다. 몸이 달뜬 큰 뱁새, 작은 뱁새들이 이리저리 돌려 몇마디를 물어야 겨우 한마디 한다는 것이 "여름도 다 갔군요" 따위의 답이다. 작은 뱁새 중에도 멍한 축에 들었던 필자는 그런 붕새를 볼 때마다 "뱁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느뇨~"라는 그 대사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잘 사는 집 뱁새들은 신기하게도 붕새의 뜻을 아주 잘, 구체적으로 간파했다. 지금 서초동을 들락거리는 뱁새들도 붕새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검언 유착' 의혹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생한 '검사 육탄전' 얘기다. 작은 붕새는 한달 째, 큰 붕새는 나흘 째 침묵하고 있다. 작은 붕새는 스스로 '수사지휘권 박탈 당한 총장'이라는 프레임 안에 '셀프 감금'한 채 모르쇠다. 그러는 사이 일부 뱁새들은 말 그대로 '소설'을 쓰면서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큰 붕새는 사건 발발 직후 입을 꾹 다물었다. 관할 직무 뿐만 아니라 국가 중요정책에 대해서도 거침 없이 소신 발언을 쏟아 내어 온 그다. 수사팀의 적법 절차를 빗나간 압수수색과 '인증샷 공보' 비판은 물론, '불법 감청의혹'까지 불거졌는데도 말이다. 급기야 그 배후로 법무부가 거론되고 있다. 반전되기 시작한 여론은 이미 검찰개혁이나 검언유착 진상 규명의 포커스를 빗겨나가고 있다.  검찰이 1호 개혁대상이 된 근본적 이유 중 하나가 "뱁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느뇨~"라는 식의 오만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계속 "붕새, 뱁새" 하면서 지금의 검찰을 저대로 방치할 것인가. '촛불'이라는 민주적 정당성 부여로, 개혁이라는 과제를 맡긴 국민들까지 뱁새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뱁새는 두 붕새의 뜻을 알고 싶다. 최기철 법조데스크 


뉴스카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