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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것들, 100주년 기념물임채원 경희대 교수올해는 3·1운동,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다. 3·1운동은 민족운동에서 좌와 우가 분리되기 전 통합적인 마지막 운동으로, 남과 북이 현대사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고리다. 상해 임시정부는 동아시아의 뉴욕 같은 세계도시 상해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평화의 화두를 실현해보기 위해 다양한 국제적 노력이 시작되었던 곳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 흐름에서 세계 평화와 반봉건의 정치 테제로서 민주공화정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제시했던 망명정부였다. 새로운 생명이 잉태하는 공간이고 시간이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을 낳은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쑨원의 중화민국, 그리고 상해 중국 공산당 창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동아시아 100년을 결정하는 역사적 순간들이 이 시기에 몰려 있다. E.H. 카가 얘기했듯이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면, 100년 전 그 혁명의 아이들이 100년 이후 어떤 한국과 중국을 꿈꿨는지는 이제 냉정한 역사의 심판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100년 전 오늘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100년 이후 오늘날, 한국과 중국의 꿈이 얼마나 현실에 정착하고 가능성의 세계로 남아 있느냐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건국 아버지들은 평가되어야 한다. 단군 이래 한국과 요순 이후 중국은 5000년 문화 전통을 갖고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캉유웨이, 유길준이 개화를 얘기한 이후 지난 100년의 역사에 미래가 녹아있다. 이 역사 전쟁에서 한국은 승리하고 중국은 철저히 패배했다. 북한의 항일무장 투쟁은 이 역사적 맥락에서 지엽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 말 서세동점의 시기에 동아시아 3국의 반응 양식은 서로 달랐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입헌군주제를 근간으로 한 나라로 20세기를 준비했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 가장 먼저 서구화를 진행했고, 그들의 대안은 독일 입헌군주제였다.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의 계몽군주제를 지향했지만, 그들의 역사적 조건은 독일식 입헌군주제의 헌법 질서조차 정착하기 힘든 나라임이 증명됐다. 이에 그들은 도사, 사쓰마 등 메이지를 이끌었던 봉건 군벌을 중심으로 관동군 등 군사 조직을 천황제와 결합해 세계 역사상 기이하고 독특한 천왕 우위국가를 만들었다. 그들이 제시한 동아시아 공동체는 일왕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관료제 사회였다.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는 당시 근대화를 먼저 시작해 물리력을 갖추고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와 그에 반발하는 한국과 중국 등 민중의 저항역사였다. 100년 전의 이 흐름은 1936년 극단적인 형태로 일본 군부에 의해 기획됐던 2·26 쿠데타 시도로 나타났다. 박정희 쿠데타의 원형은 이 시기 일본 군부의 흐름에서 확인된다. 더구나 100년 전과 현재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더욱 관심을 끈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상해에서 창당됐다. 진독수와 이대교 등 당대 중국 진보운동을 끌어갔던 인물뿐만 아니라 현재 신중국을 열였던 마오쩌둥도 호남성을 대표해 이 전당대회에 참석했다. 이들의 바람은 처절했다. 이민족 청나라가 못하는 일을 중국의 인민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했던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반제국주의와 반봉건, 계급을 넘어서는 인민독재를 이상으로 제시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생경하고 거칠지만, 보통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고, 그들의 권리가 실현되는 나라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100년 뒤 2021년에 이 꿈은 실현되고 있는가? 가능한가? 중국 인민들은 앞으로 2년 동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시진핑에게 물을 것이다. 1921년 진독수와 이대교, 마오쩌둥이 꿈꾸었던 자유롭고 인민의 권리가 보장되는 중국이 실현되고 있는가? 그 동안 침묵했던 인민들은 중국 공산당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두개의 100년’ 중 첫 번째 100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금부터 묻기 시작할 것이다. 지난 주말에 일어난 홍콩의 2019년 우산혁명은 그 첫 번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구나 그곳은 현대 중국 혁명의 근원지 상해다. 그들은 대답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100년 중국의 미래가 있다. 더 근본적인 10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3·1운동 기념식은 형식적인 대통령 연설로 지나갔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기념식에는 대통령이 한국 기념식도, 중국 상해기념식도 아닌 미국에 가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었다. 100년이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3월1일 시작을 못했으면, 또 4월11일에 못했으면 이제라도 시민이 중심이 되어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을 시작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기억에서 잊혀지지 전에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100년 뒤, 200주년을 기념하는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 1919년에는 3·1운동이라는 새로운 평화운동과 민주공화정의 시초를 열었다면, 2016년 촛불혁명 이후 선조들은 무엇을 했는가 하고 100년 후손들은 물을 것이다. 기억에서 너무 빨리 지워져가고 있는 것들을 이제는 되돌아보고, 100년 후손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 역사의식을 가지고 되돌아봐야 할 때 같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내 입맛대로' 정치하는 한국당박주용 정치부 기자자유한국당 지도부는 24일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이낙연 국무총리의 시정연설에 불참하며 북한 선박 입항 현장과 인천의 붉은 수돗물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한국당이 국회는 뒤로 하고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를 극대화하기 위해 또다시 발걸음을 장외로 돌렸다. 한국당은 국회 정상화와는 별개로 윤석열 검찰총장·김현준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함께 북한 선박입항 사건,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와 관련한 국방위원회와 운영위원회 등 일부 상임위에 선별적으로 참석한다고 밝혔다. 국회 본회의 불참을 고수하는 한편 일상적 법안 심사와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 심의는 거부하는 '반쪽 국회' 전략이다. 한국당의 이같은 행보는 국회 전체의 정상화는 계속 거부하면서 북한 선박 입항과 관련한 청와대 은폐 의혹, 붉은 수돗물 사태의 책임 규명 등을 위한 상임위만 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결국 문재인정부를 공격하기 좋은 이슈가 있는 상임위만 열어 실정을 집중 추궁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이날 현장 방문은 상임위를 공식적으로 열기 전에 사안의 중대함을 더욱 크게 알리기 위한 사전 움직임으로 보인다. 제1야당의 '입맛대로 정치'로 여야 간 대치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는 한국당의 몽니로 지난달부터 50여일동안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 개혁법안과 유치원 3법 등 각종 민생법안이 산적해 있다. 특히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국회로 넘어온 지 60일이 넘도록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게 여야가 정쟁에 얽매이며 시간을 낭비한 탓이다. 그나마 여야 4당은 논의라도 해보기 위해 6월 국회 문을 열었지만 한국당은 여전히 이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국회에서 민생법안과 추경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고 해도 쉽게 통과하거나 처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쌓이는 이슈들을 놓고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민생 경제의 어려움이 점점 더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야 3당의 합의문이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추인받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한국당은 과감하게 국회로 복귀해 산더미처럼 쌓인 이슈들을 파헤쳐야 한다. 야당의 존재 이유는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지만 정권교체의 목표도 있다. 정부 견제 역할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존재감을 국회 내에서 보여주길 바란다. 박주용 정치부 기자(rukaoa@etomato.com)